세계여성의 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저열한 성추행의 유령이 한국사회를 떠돌고 있다. 국회의원이 여기자를 성추행하고서는 죄가 없다 버티고 있고 교도관이 재소자를 성추행한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입으로 겨우 세상에 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지금 신문을 뒤덮고 있는 것은 국무총리가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과 골프를 친 이야기이다.
세 가지 사건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어나서는 신문의 경향에 따라 크게도 작게도 취급되고 있으면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형국까지 가고 있으니 기묘하다. 과연 본질적으로는 세 사건 중에서 죄질은 누가 가장 나쁜 것일까?
이해찬 총리. 골프를 친 비용을 업자가 대신 내주고 식사 대접도 받았다. 같이 골프친 사람들은 모두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이다. 가격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제분업자가 있는데 이번 모임을 주선한 이기우 교육부 차관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이 회사 주식을 매입했다. 우선은 이기우 차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총리라면 아랫사람을 잘못 거느린 것도 죄이다.
최연희 의원 사건. 동아일보 기자들과 한나라당이 술을 먹다가 2차에서 여기자를 희롱했다. 골프를 친 것은 범죄행위는 아니지만 성추행은 범죄행위이다. 따라서 최연희 의원의 죄는 총리보다 크다. ‘음식점 주인인줄 알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는 술시중 전문직이 있었다. 돈이 많이 드는 자리이다. 그런데 총리의 골프가 비용대납까지 언급되는 데 반해 이 사건은 오로지 성추행 여부만 시끄럽더니 총리 문제에 덮히다시피하고 있다.
그러면 그 술자리 비용을 한나라당이 부담했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대접받은 것은 아니니까 총리보다 낫다고 해줘야겠지만 세금에서 정당지원금이 나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죄도 적지 않다. 대접을 받은 신문사를 보자. 총리 사건 보도에 준해서 따진다면 한나라당을 신문기사로 얼마나 봐주었는지 함께 조사해야 공평하다.
만일 정부를 공격하는 것도 한나라당에 도움을 준다고 평가한다면 유죄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자는 기사를 얻기 위해 어디든 가야 하고 무슨 짓이든 한다. 또 기사의 가치판단이나 비평이 밥과 술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신문사는 독자들과 광고주덕에 사는 사기업이지만 총리는 세금으로 녹봉을 받는 공인이다. 그러니 신문사가 사기업이라고 인정해버리면 이 신문의 죄는 총리보다 가볍다. 아니 죄가 없다. 그러나 언론의 공공성을 주장하고 싶다면 기사와 사설, 칼럼에서 공정했는지를 총리의 죄를 문책하는 만큼 엄정하게 계량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교도관 사건. 물을 필요도 없이 죄질이 가장 나쁘다. 성추행 자체가 죄가 되는데다가 자기가 가진 권력을 이용해 자기가 돌봐야 할 약자를 희롱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피해자에게 남겼다. 그에게 맡겨진 역할이 재소자를 이끌어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국가가 부여한 임무 역시 더럽혔다. 교도행정에서는 가끔 성별을 가릴 것 없이 재소자에 대한 폭력이나 과도한 징벌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기가 괴롭힌 재소자가 출소하여 비리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가석방이나 특사를 꺼리는 교도관도 있다고 한다. 힘든 여건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많은 교도관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은 교도행정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을 얼버무리려 한 법무부 당직자들의 죄질도 매우 나쁘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은폐하려 했는지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인 재발 방지책이 나와야 한다.
총리의 골프 사건에서 보듯 공무원과 업자의 야합을 관행으로 변명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인권침해 뿐 아니라 지저분한 술자리도 문제가 되어야 옳다. 그 과정에서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권력남용인 재소자 성추행이 소홀히 다뤄져서는 절대 안될 것이다. 공직자들이 시대에 걸맞는 윤리의식과 도덕적 책임을 따라 잡을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