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민주주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광장으로 간다.
친구들의 손을 잡고 삼삼오오 모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마치 나들이 가듯 유모차를 끌고
서울 시청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촛불 하나씩을 들고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일명 '명박산성' 앞에서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며
청와대를 향해 외쳤다.
일부 언론과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은 이들의 배후에 불순한 정치세력이 있음을 언급하며
마치 사탄의 무리인양 선동해 대고는 있으나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광화문 일대를 가득 매운 사람들의 목적은 '투쟁'이 아니라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대화하자고 하는 자에게 악마의 자식이라 명명하는 이가 오히려 사탄이고 악마며 민주주의의
적임에 분명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1987년을 떠올리기도 하고, 혹자는 디지털 포퓰리즘이라며 질시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한 대학교수는 프랑스의 68혁명에 견주어 보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민주화 쟁취 이후 가장 많은 이 땅의 시민들이 공유된 이해와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그들을 이끈 것은 첫째가 바로 자신 주변의 삶의 위협으로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나라의
주권자의 말에 귀를 닫은 위정자들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열망이었을 것이리라.
물론 '쇠고기 파동'이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시민들이 직접 행동으로 의사를 표출한다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 기제가
멈춰버렸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건국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의회제도는 국민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갈등을 완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지역과 계층을 더욱 세분하여 그들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하였다.
표면적인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은 이룬 듯 했으나 더불어 사회적 형평성의 문제는 그 상대적 차이가
더욱 부각되어 왔다.
그런 배경 속에서 먹거리라는 '생활'의 위협이 눈 앞에 닥치자 너도나도 없이 일어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 집회는 대한민국의 정치권과 행정부 모두에게 풀어야 할 숙제를 안겨
준 셈이다.
벌써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비판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청와대나 여당 모두 '그들만의 공화국'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인한 반사적 이익으로 정권을 잡았으면서도 마치 자신들의 공으로
얻은 전리품 마냥 권좌의 아귀다툼을 벌렸다.
'고소영 내각'이니 '강부자 정권'이니 하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인사를 강행한 것은 이명박 정권의
원죄다.
결국 그들은 대통령 주변을 인의 장막으로 둘러싸고 국민의 요구가 아닌 그들의 판단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거기다 모든 것을 경제적인 논리로만 바라보려는 대통령의 시각은 애시당초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에
합당하지 않다.
게다가 이상득 의원의 막후 실력 행사는 독재정권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권력의 사유화'를 연상시킨다.
결국 이번 일의 해결은 다른데 있지 않다.
민주주의 정신에 충실한 정권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국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도 못하고 갈등을 해소하지도, 이해 관계를 조정하지도 못하는 그런
정부와 국회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며칠 전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자의든 타의든 대폭적인 개각은 불가피한 일이다.
애시당초 자격이 없던 이들은 모두 권좌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정말 능력있고 국민들과 소통하는 인선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은 단지 사람을 뽑는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직무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란 이념적 가치는 구체적인 제도화로 완성되었다.
사람은 제한적 합리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새정권이 들어서면서 개헌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한다.
단지 권력을 얼마만큼 더 가질까를 고민하지 말고 정말 현재의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국가의 제도는 어떤 것인지를 논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