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또다른 '기회'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금융위기는 화폐 금융의 근본적인 원리 하나가 뒤틀어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장실패를 대변한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통화'는 기실 실물을 기반으로 한 1:1의 교환적 가치가 아니다.
이른바 '신용의 창조'를 통해 화폐는 전 세계의 시장을 흘러다니며 그 가치를 몇 배, 몇 십 배 부풀려진다.
그런고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런 화폐금융시장의 위험에 대한 대비와 규제장치들은 건재했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에서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투자은행들의 족쇄가 풀리는 순간, 성난 황소같은 금융자본들은
전 세계를 누비기 시작했다.
지난 20여 년간의 고성장과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는 이런 금융자본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문제는 이런 금융자본은 그 순환과정이 대단히 순조로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은 바로 이런 금융자본의 가장 취약한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동안 세계 경제는 미국시장에 상품을 수출해 달러화를 벌어들인 나라가 그 돈으로 미국 채권을 사주며
달러화를 미국에 되돌려주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덕분에 미국인들은 저리로 빚을 얻어 집도 사고, 외국의 상품을 분에 넘치게 소비하는 대신 수출국들은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활용해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없이 오를 것만 같았던 미국의 집값이 폭락하면서 신용도가 낮은 개인을 대상으로 돈을 꾸어 주었던
은행, 이를 근거로 파생상품을 설계했던 증권회사가 줄줄이 도산하며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이번 금융시장 위기는 글로벌화가 진행된 후 최초로 발생한 21세기형 위기로 그 충격이 너무나 심각하다.
돈은 더 이상 은행에 묵혀두는 것이 아니라는 세계적 조류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미들이나, 주가 3000까지 간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자신에 국민연금마저 주식에 올인하는 국민연금기금이나
이제 '불면의 밤'에 뒤숭숭해하고 있다.
14일 폭등한 전세계의 주가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예측불허 그 자체다.
오히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은행의 유동성 위기와 환율의 널뛰기 속에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중소기업들은 '흑자도산'이 속출하고
있고, 그나마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대기업 역시 내년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분주하다.
결국 다급해진 것은 정부다. '747'공약은 고사하고 3%로 뚝 떨어진 내년도 경제 성장 전망에 황망하기만 한
모습이다.
'위기가 곧 기회다'라며 외치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강만수 장관의 모습이 참 뜬금없어 보일 정도로 실제 정부
정책은 단기적인 위기 대응에도 벅차 보인다.
당장에 6조 40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기업들이 보유한 부동산을 매수해주겠다는 발표는 신자유주의적
이라기 보다는 무척이나 '친재벌적'이다.
결국 문제는 고삐풀린 금융자본은 자기 잇속만 차리는 애물단지 그 이상 아닌 셈이 되어 버렸다
. 이번 사태에 대한 전 세계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선진7개국(G7)은 지난 주말 회동해 통화공급 확대를 결의하고 호주는 은행예금에 대해 무제한 보장하겠다고
나섰다.
영국은 은행의 부분적인 국유화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표현대로 유동성 경색을 '헬리콥터를 타고 돈을 뿌려서'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이번 금융위기가 본질적으로 해결되려면 그동안 엄청나게 뻥튀기된 금융자본을 뒷받침할만한
자금력의 창출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자금의 동원은 세계 11위의 우리 경제로도 감당불가능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IMF조차도 넋놓고 손가락만 빨고 잇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유로화' 공동체로 단단히 묶인 유럽조차도 아이슬란드의 국가부도 위기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인데 하물며 우리 정부 혼자서 어찌 해보겠다는 것은 애시당초어불성설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시아 시장 역시 구체적인 경제권역을 구성할 때가 되었다. 아시아 각국은 지난 97년
이미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체질을 한 번 개선했다.
이번 금융위기에도 그나마 숨이라도 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한-중-일'이라는 추상적인 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좀더 확대된 권역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는 우리나라의 수출 드라이브를 결정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이명박대통령 말처럼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시야를 넓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