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비록 이번 순방길이 중국과 일본 위주로 일정이 짜여져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몇가지 중요한 쟁점을 가지고 있는 터라 이번 방문의 결과에 내심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산적한 현안만 해도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공조, 전작권 환수를 돌러싼 '전략동맹', 그리고 한미FTA의 조속한 비준과 같이 굵직굵직한 것들이었다.
우선 북핵문제의 경우 북-미 회담을 앞두고 한-미간 '그랜드바겐'이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성과라 하겠다. 미국의 역할은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는 것일 뿐, 그 이상은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핵포기시 완전한 경제적 지원과 평화협정의 수순을 밟기로 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과 미국의 시각이 큰 차이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장 괄목할 성과는 역시 '전략동맹'의 재확인이다. 내년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양국의 외교 및 국방 장관이 직접 만나 양국의 미래 관계를 협의키로 한 것은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여전히 우려스러운 것은 한-미 FTA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자동차 분야 재협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대통령은 '자동차 시장을 개방 해서 FTA를 타결 하실 그런 의향은 있는지'라는 질문을 받고 "자동차 분야가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다"고 말한 것이다.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미국 의회의 벽 앞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온 발언일 수도 있으나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에서 추가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한미 FTA 문제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겠으나 미국측에게 재협상이나 추가협상 용의를 표명했다는 오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선 신중치 못한 발언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미국측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니 한번 들어보겠다"는 뜻이라고 부연설명하고 있지만 자동차 분야의 보완 없이 한미 FTA의 비준은 안 된다는 미 의회의 강경기류 등을 감안하면 '들어보는 수준'으로 끝나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오바마 대통령이 "효과적으로 다루지 않은 경제 분야가 있다"고 말한 것도 협상 내용의 수정 필요성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다.
자동차 문제는 어떤 형태의 재논의든 미국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면서 한국의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는 일괄타결방식으로 이뤄진 협상 결과 전체가 뒤흔들릴 수도 있다. 한국이 '자동차'를 얻기 위해 농업과 지적재산권 등 여러 분야를 양보했는데 자동차만 따로 논의할 경우 우리에게 득보다 실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자동차를 다시 협상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어렵게 맞춰놓은 불안한 균형이 무너져 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재협상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벌써부터 농업이나 서비스업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아예 이번 기회에 FTA를 전면 재협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오바마가 남기고 간 숙제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정부의 정교한 대응이 필요한 때이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