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 철책 위에 봄이 오면/ 갈매기들은 연평도를 입에 물고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다/ 어린 초병의 날카로운 눈빛에 봄 빛이 돌고/…연평도는 첨벙첨벙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 꽃게들에게 무릎을 꿇고 운다/…꽃게들도/…연평도를 꼭 껴안고 운다/…아낙네들은 안다/ 서해의 낙조가 왜 서러운지를/ 연평도가 왜 가끔 바다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지를…' (정호승 시인의 '연평도' 중에서)
많은 이들이 간절히 살아돌아오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해군 772호 천안함의 승조원들이 차가운 바다 밑, 부서진 함정의 어두운 벽에서 차가운 주검이 되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만 20일. 한때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 약혼자, 아들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전사자' 혹은 '희생자'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말 그대로 너무도 잔인한 4월이다. 군은 침몰 20일 만인 15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의 함미를 인양한 뒤 실종 장병 44명의 수색작업을 진행, 36구의 시신을 수습하고 신원을 확인했다. 나머지 실종 장병 대부분은 ‘외부 폭발’ 충격에 의해 산화(散華)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 누구보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 아버지와 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은 통곡의 바다에서 다시 비탄에 빠졌다. 실종자들을 구하러 서해 바다에 목숨을 묻은 한주호 준위의 살신성인 희생까지 치르며 밤낮없이 구조에 매달린 해군 장병들 또한 비통의 눈물을 삼키고 있다. 국민들도 허탈함과 북받치는 울분에 마음이 너무 아프고 무겁다. ‘바다를 지켜야만 조국이 있다’는 해군가의 다짐대로 나라를 위해 소중한 생명을 바친 젊고 어린 장병들에게 두 손 모아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
건져 올려진 반토막 천안함을 바라보는 심정은 처참했다. 너덜너덜해진 절단부처럼 가슴이 찢어져 나갔다. 그들이 그날 목격하고, 마주쳤던 엄청난 충격과 절단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왜, 어떻게 천안함을 부수고, 우리의 해군 용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한줌 의혹없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의무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분명히 정해졌다. 우선 이번 처참한 모습으로 두 동간 난 천안함에서 보듯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현실이 엄혹하기 짝이 없다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냉정한 사태 인식을 바탕으로 천안함 침몰에 얽힌 진실을 명백히 밝혀내고 단호하면서도 지혜로운 대응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특히 정부와 군은 희생 장병들과 유가족들에게 최고의 국가적 예우를 갖춰야 할 것이다. 비탄 속의 유가족들은 고비 때마다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무엇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길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상한 상황에서 우리 군의 대처는 완벽했는가,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는 않을 것인가, 진상규명 후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의문과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 당당히 대처해 나가는 것만이 그동안 허둥대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씻어내는 길이다.
다만 안타깝고 불안한 것은 과연 정부와 군이 이런 진실을 밝히고자 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이다. 사고 초기부터 시작된 군의 허둥대는 모습과 정부의 임기응변적 태도는 많은 국민들의 불신을 낳았다. 거기다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행태와 막말에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었다.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 정부와 군은 한층 더 진솔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국가는 이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야 마땅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임무를 수행하다 산화한 천안함 해군들의 희생을 기리며 명복을 빈다. 깊은 슬픔 속에서도 의연함을 보여준 유가족들에게도 위로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