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정수장학회
지난 2005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진실위)'에서 부일장학회 헌납 및 경향신문 매각사건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밝힌 적이 있다.
당시 부산의 기업주이던 김지태씨가 석방의 대가로 자신 소유의 부산일보와 한국문화 방송, 부산문화방송사의 주식과 부일장학회 토지 10만 여평을 국가에 강제기부 했다는 것이 골자다.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기부받은 재산을 토대로 5.16장학회를 설립했고 이후 현 정수장학회로 개명 했다는 것이 발표내용의 핵심이다.
물론 강제헌납 과정에 당시 중앙정보부가 개입됐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졌다는 게 국정원진실위의 조사결과다.
중앙정보부는 헌납의 합법성을 가장하기위해 기부승낙서까지 변조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매각과정 또한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를 내세워 강제매각 절차를 거친뒤 결국 5.16장학회 소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국정원 진실위의 발표대로라면 박정희 정권이 부일장학회와 경향신문을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 강탈했다는 이야기다.
40년을 훨씬 넘긴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군사정권의 탈법적인 만행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었다. 기업인과 그의 가족을 엉뚱한 죄명을 씌워 구속시킨 뒤 석방을 조건으로 사유재산을 빼앗는 방식은 미개한 나라의 독재정권하에서나 들어보던 일이다.김씨는 한을 품고 사망했지만 그의 유족들은 그동안 빼앗긴 재산을 찾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강제헌납의 부당성을 호소했지만 별무 성과였다.
김씨는 사망하기 전 출간한 자서전에서도 당시 강제헌납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으며 김씨의 아들이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포기각서를 썼다'는 주장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부일장학회는 박정희 정권의 소유로 넘어가 정수장학회로 이름이 바꼈고 운영 또한 전적으로 박 전대통령의 유족과 측근들에 의해 이뤄져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가에 대한 헌납이라면 당연히 공적으로 관리되고 운영되어야 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수장학회는 박 전대통령 유족들의 사유물처럼 인식돼 왔다.비록 박근혜 비대위 위원장이 지난 2005년 진실위 발표와 함께 이사장 직에서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현재 부산일보 주식 100%, 문화방송 주식 30%를 보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은 박 위원장의 최측근이 맡고 있다.
부산일보에선 지난달 초 박 위원장이 정수장학회에 여전히 관여하고 있다는 노조와 사측이 충돌하면서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사태를 빚었다.
또 영남대의료원 노조 측은 지난달 여성해고자 복직을 위한 집회를 박 위원장 집 앞에서 개최하면서 '영남학원 재단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박 위원장'이라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박 위원장은 정수장학회나 영남대 문제가 법적으론 정리됐다 할지라도 이 두 기관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전면에 떠오르는 사태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문제가 올 대선에 어차피 한 번 더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이상, 지금 칼을 꺼내 이 매듭을 자르는 게 낫다. 박근혜 대표의 결단이 요구되는 이유다.
박대표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정수장학회를 되돌려주고 소유와 운영에서 손을 떼기 바란다.
현 장학회 이사진들도 전원 사퇴하고 정수장학회가 공익재단으로 거듭날수 있도록 해야 한다. `헌납은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며 하자가 없기 때문에 정권이 몇차례 바뀌어도 지금까지 존속해왔다'는 박대표의 해명은 이제 설득력이 없게됐다.
관련자들의 피해를 구제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정수장학회를 재산의 사회환원이라는 김지태씨의 유지를 살릴 수 있도록 쇄신해야한다는 진실위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김씨 유족들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