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321
꽃을 그리는 사람들 4 - 싸이 톰블리
Cy Twombly, Scent of Madness, 1986 © Cy Twombly Foundation
이 작품 속 꽃에서는 ‘광기의 향기’라는 제목처럼, 꽃 향기가 미치도록 열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이것은 제 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명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신표현주의 작가 싸이 톰블리(Edwin Parker Cy Twombly Jr., 1928~2011)의 작품이다.
Cy Tombly, Untitled, 1970 (2015년 소더비에서 최고 판매가를 기록한 작품) © Cy Twombly Foundation
이 작품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 ‘아무렇게나 막 그린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유명한 건가?’ ‘내가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이랑 비슷한데?’라는 생각들을 했다.
심지어 비평가 커크 바르네도(Kirk Varnedoe)도 “우리집 애도 하겠다!”고 비판했고, 동료 화가 도날드 주드(Donald Judd)도 그림에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세계 최대 미술 경매회사인 소더비에서 2015년에 사상 최고가인 7050만 달러(한화 약 911억 원)에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에는 ‘누가 이런 그림을 수 백억을 주고 사는 걸까?’ ‘나도 화가나 해서 돈이나 벌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런 평가들은 모두 낙서 표현을 이용하는 톰블리의 화풍 때문이었다. 미국은 앤디 워홀(Andy Warhol) 등의 강렬한 색감의 화려한 팝아트가 대량 생산되는 1960년대를 거쳐서 1970년대에는 추상주의가 유행했다.
이런 암호화된 추상주의에 반대하면서 싸이 톰블리를 비롯한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예술계에서 비주류나 소외계층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 그 중에서도 스프레이로 길을 채우는 그래피티(Graffiti)에 주목했다.
이렇게 낙서운동이 신표현주의의 발생을 도모했고,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한 톰블리 역시 그래피티의 성장과 함께 정통미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각각의 미술 기법에 대해서도 존중했고,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누구보다도 미술에 진지했다.
Cy Tombly, Proteus, 1984 © Cy Twombly Foundation JD, Untitled, 2016 © LSF Foundation (Inspired by Cy Tombly)
아주 가느다란 초록 줄기에서 붉은 꽃은 변신을 위해 뿜어내는 마술쇼 연기속 폭죽처럼 피어오른다. 이것은 다름아닌 바로 자유롭게 변신을 할 수 있는 바다와 예언의 신 프로테우스였다. 톰블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 작품을 그렸다.
이것은 톰블리가 나무 판에 각각 다른 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장미들이다.
Cy Tombly, The Rose III, 2008 © Cy Twombly Foundation
Cy Tombly, Untitled (Roses), 2008 © Museum Brandhorst
겹겹이 둘러싸인 꽃잎들이 부채춤을 추듯 이어져 있다. 여기에서 마치 잔인하고 혹독하게 아픈 가시처럼, 그리고 아주 찰나같이 짧은 만개의 순간처럼 물감들이 쓰게 흘러내린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시의 일부분이 적혀져 있다. 그의 이 노트는 작품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의 감성을 담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톰블리는 오스트리아 여류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그리고 미국 태생의 영국 시인이자 극작가 였던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S. Eliot)의 시까지 다양한 시를 자신의 작품속에 적어 넣었다.
The soul has
Moments of Escape
When twisting
all the doors
She dances
like a Bomb
abroad
and swings
upon
the Hours
After: Emily Dickinson, “The Soul has Bandaged moments,” circa 1862
“영혼이 탈출의 순간을 포착하고 모든 문들이 비틀어져 열릴 때 그녀는 맹렬히 춤추며 시간과 함께 좌우로 흔들린다.”
톰블리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통해 봉우리를 터트리는 꽃을 자유로운 춤으로 표현했다.
Cy Twombly, Blooming, 2001-2008 © Cy Twombly Foundation
JD, Untitled, 2016 © Private Collection (Inspired by Cy Tombly)
감정, 생각, 분위기와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톰블리는 꽃을 통해 삶의 환희와 기쁨을 표현했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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