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그리는 화가들 1 - 세잔과 마티스

유로저널 322

사람을 그리는 화가들 1 - 세잔과 마티스

세잔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직접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의 ‘몸철학’ 또는 ‘몸현상학’에서 세계는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바탕으로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는  삶을 '몸'을 바탕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정신', '의식' 같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메를로 퐁티는 정신을 '체화된 의식(conscience incarnée)'이라고 여겼다. 몸을 현상학적으로 파악하면서 몸과 정신은 서로 얽혀있고 정신이라는 것은 몸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이런 몸철학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을 예로 들었다. 폴 세잔은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물아일여(物我一如)다. 주체와 대상이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상태로 '나'라는 존재가 풍경의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나를 통해서 자기의 색을 본다는 것이다.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  1904-1906, ⓒ 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

이런 물아일체의 상태에서 폴 세잔은 생트빅투아르 산을 수 천번을 그렸다. 깊은 몰입의 감각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사유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세잔은 자신이 풍경 자체가 되었다. 

메를로 퐁티는 이렇게 사유중심의 철학에서 감각중심의 철학을 구축했다. 감각과 운동은 같이 일어난다. 감각과 운동은 우리의 삶과도 관련이 있다. 삶에 있어 평생동안 우리가 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노동'과 '여가'다. 노동은 '운동'이 중심이 되고 여가는 '감각'이 중심이 된다.

인간의 운동을 통한 행위인 노동 자체는 우리 삶의 기초적 목표라기 보다는 삶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보다는 여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는 최대한 감각적인 것을 더 추구한다. 즉,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최대한 늘려 감각적인 삶을 향유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폴 세잔은 이성적 사유와 분절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우리들에게 감각적 세계를 활짝 열어주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각의 영역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최대한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Paul Cézanne, The Large Bathers, 1895–1906. ⓒ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발가벗은 여자들이 단체로 숲에서 목욕을 한다. 여자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표정과 감정이 상상이 된다. 목욕탕 티타임처럼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 같다.

세잔은 20년 전에도 이렇게 여자들이 강가에서 목욕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Paul Cézanne, Bathers,1874–75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 작품에 비해서, 1906년에 발표한 ‘대수욕도’에서는 더욱 다양한 각도와 반복으로 자유분방하게 여성들의 나체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1906년에 이 작품에 세상에 전시되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은 구속이나 속박없이 마음이 가는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때이지만, 보수적인 그 시대에는 숲에서 여자들이 그것도 단체로 벌거벗고 목욕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이런 세잔의 작품들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양식을 탄생시키는 영감을 주었다. 마티스는 ‘야수파’를, 또 피카소는 ‘입체파’를 이끌어내게 된다. 그리하여 전시되었던 당시와는 달리 세잔의 이 작품들은 현재 현대예술 중에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티스

1906년 세잔의 작품을 본 앙리 마티스(Henry Matisse, 1869~1954)는 세잔을 자신의 아버지라고까지 하면서 칭송했다. 그리고는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춤’을 완성했다. 

Henry Matisse, The Dance 1, 1909. ⓒ MoMA

이것이 ‘춤1’이다.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 전시되어 있는 세로 2.5미터, 가로 4미터 가까이 되는 이 거대한 작품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작품 중 하나다.

발가벗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듯 춤을 추고 있다. 세잔의 작품과는 달리  파랑, 초록, 그리고 주황빛의 원시적이고 강렬한 색감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세잔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린아이가 뛰어놀 듯 큰 율동감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앞쪽의 두 사람은 손을 놓치면서까지 몸을 꺾으면서 격렬하게 움직인다. 초록 바닥때문에 들판인가 싶다가도 푸른 배경색때문에 바닷가인가 싶기도 하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장소에서 오로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사람들의 몸 ‘춤’만으로 굉장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마티스는 작품 ‘춤’을 완성 위해 객체 하나 하나를 따로 그리면서 연습을 했다. 

Henry Matisse, Study For 'The Dance', 1932          JD, Untitled, 2017 © LSF Foundation (Inspired by Henry Matisse)

구불구불 굽이치는 선들이 흥겨운 몸짓이 되어 자유롭게 흘러가고 거기에 단순한 색이 강렬한 에너지를 더하고 있다. 자세한 얼굴과 세세한 근육의 표현없이 선과 색만으로 그려진 사람이 이렇게 자유로움과 경쾌함을 뿜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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