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치부와 내부자 폭로 권력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실상 세간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권력 그 자체로 '의뢰하는 자'와 '의뢰받는 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호혜관계 때문이다. 이런 권력적 치부들은 주로 내부자의 폭로에 의해서만 알려지는 게 다반사다. 이런 정치적 폭로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지난 1972년 미국에서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당시 닉슨 대통령 측이 재선을 위해 워터게이트 빌딩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하다가 발각되었는데, 이 사건을 들춰낼 수 있었던 주역은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라는 걸출한 두 기자와 그들의 뒤에 익명의 제보자였다. 딥스로트(Deep throat)라는 암호로 불린 이 제보자가 없었더라면 두 기자의 집요한 취재에도 불구하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결말은 지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딥스로트는 사건의 고비마다 두 기자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거나 취재방향을 올바르게 이끌었다.딥스로트의 신원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확인까지 무려 33년이 걸렸다. 사건 당시 FBI 부국장이였던 마크 펠트였다. 신원이 밝혀졌을 때 마크 펠트는 95살로 치매에 걸린 상태였다. 펠트의 가족과 두 기자가 딥스로트의 신원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다른 언론의 취재 때문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개 과정이나 익명의 제보자 딥스로트의 뒤늦은 확인은 모두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워터게이트 사건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구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사건 당사자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나 비서관,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모두가 발뺌으로 일관했다. 기억나지 않는다, 돈 봉투 사건을 폭로한 의원과 일면식도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돈 봉투 전달 심부름을 한 비서 고명진 씨의 양심고백으로 이들의 주장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고 씨는 언론에 공개한 글을 통해 "정작 책임 있는 분이 자신의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을 보고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사건과 무관한 사람까지 허위진술을 강요받았다"고 했다. 박 전 의장을 비롯한 주변 인사들의 거짓말과 은폐가 드러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역시 어떤 형태로든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지금 세간의 관심이 쏠려있는 이른바 '기소 청탁' 사건도 이와 유사하다.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 김모 부장판사가 검사에게 일본 자위대 기념행사에 참석한 나 전 의원을 인터넷을 통해 친일파라고 한 사람을 기소해 달라고 청탁을 했다는 것이 사건의 내용이다. 당시 해당검사였던 박은지 검사는 검찰을 통해 경찰에 제출한 경위서에서 청탁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부장판사가 "기소를 하면 그 뒤는 법원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는 거다. "후임 검사에게 업무인수인계 과정에서 청탁 사실을 전달했다"고도 밝혔다. "전화를 건 사실은 있으나 청탁은 없었다"는 게 부장판사의 주장인 면에서 보면 이번 논란은 진실게임의 양상으로 흐른다. 하지만 두 사람 간의 전화 통화 사실과 내용이 외부에 새어나간 것을 보면 아무래도 검사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두 사람만이 알고 있어야 할 은밀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다는 것 자체가 해당 검사의 소신 있는 행동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판사와 검사 사이에 서로 부탁을 주고받는 커넥션이 형성돼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실제 전개된 상황을 봐도 그런 생각이 든다. 기소를 빨리 해 달라고 전화를 걸거나, 전화를 받고는 출산휴가를 가면서 다른 검사에게 인계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일반인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당시 디스크 파기에 청와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시가 있었다는 양심선언도 있다. 당시 디스크 훼손에 참여했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의 증언이다. 민간인 사찰에 대한 증거인멸 과정에서 청와대 행정관들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라고 했다는 구체적인 지시내용까지 밝혔다. 청와대 행정관은 평생을 책임진다고 했다고 한다. 재수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 직원의 양심선언이 헛말은 아닐 것이라는 심증을 강하게 갖지 않을 수 없다. 중국 후한시대 양진이라는 관리가 했다는 말이 있다.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고(地知) 그대가 알고(子知) 또한 내가 아는데(我知)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느냐." 그 유명한 사지(四知)이다. 교과서 같은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맞는 말이라는 것을 위의 사례들이 잘 보여 준다.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는 것을. 하긴 이런 사례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만은. 진실은 언제,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을 믿고 또 그런 사례들을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기분은 불쾌하기만하다. 진실이 밝혀낸 지도층 인사들의 모습이 너무나 추악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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