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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 손가락을 잘 보세요. 이렇게 살짝 터치하는 거예요. ‘내가 누르기만 하면 이상한 게 뜬다’고 무서워하셨던 분도 계시죠? 버튼처럼 꾹꾹 누르면 안 됩니다. 그림만 정확하게 터치하세요. 키오스크는 터치 화면이라는 걸 잊으시면 안 돼요.”
지난 9월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시립노인종합복지관에서 키오스크 강좌의 3학기 첫 수업이 시작됐다. 실제와 똑같은 키오스크를 앞에 두고 강사가 사용법을 설명하자 희끗희끗한 머리에 돋보기를 낀 70~80대 학생들이 내용을 꼼꼼하게 노트에 적었다. 아직은 손글씨가 가장 편하다. 중요한 부분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당장 화면에 안 보인다고 ‘왜 이것밖에 없어’라고 하지 마시고, 화살표 버튼을 눌러 위아래에서 찾으세요. 글씨 읽는 게 힘들겠지만 설명은 잘 보셔야 해요.”
2년여 만에 대면 활동이 재개된 도시 곳곳에는 ‘신문물’이 투명장벽처럼 도사리고 있다. 디지털 낙오자에게 걸림돌은 식음료 주문만이 아니다. 식당·영화 예약, 택시 승차의 기회도 빼앗긴다. 경제활동을 위한 기능적 공간인 도시는 성장을 목표로 한 기술혁신의 장이다. 빠른 변화와 적응이 경쟁력인 공간에서 낯선 이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일은 금기에 가깝다.
도시 고령화가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공간과 구성원 간 부조화 탓이다. 역사상 지금처럼 많은 노인이 도시에 산 적은 없다.
전 세계 대도시 인구의 5명 중 1명이 만 65세 이상이며 서울 시민의 중위연령은 이미 42.8세다. 예정대로면 2050년 한국인의 37%가 노인이 된다. 하지만 전례없이 길어진 은퇴 이후의 시간을 꾸려갈 자원과 상상력은 부족하다. 노인 부양을 맡았던 가족과 이웃도 해체됐다. 인구 3분의 1이 노인이 될 숙명을 도시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키오스크와의 고군분투
복지관, 노인대학, 동주민센터 등에서 최근 인기가 많은 고령층의 키오스크 수업은 보통 5~6주, 길게는 12주 과정이다. 화면에 뜬 아이콘을 찾아 누르는 게 전부인데 12차례나 뭘 가르칠 게 있을까. 의구심은 복지관 수업이 ‘터치법’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며 풀렸다. 태어나자마자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려 잠금을 풀 줄 아는 요즘 아이들이 ‘터치 네이티브’라면, 노인들에게 ‘터치’는 여전히 어색한 동작이다. 게다가 말 몇 마디로 끝날 주문을 수십가지 선택지를 늘어놓고 고르게 한다. 어르신들은 키오스크를 ‘고문기계’로 부른다고 했다.
이날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키오스크는 매장마다 다르니 설명을 잘 읽어야 한다”고 몇 번을 당부했다. 글씨가 작아 읽기 힘들어도 꼭 확인하라는 말과 함께.
“기계가 포장할 건지 먼저 물을 수도 있고, 메뉴를 먼저 고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보면서 그대로 따라가셔요. 하고 싶은 걸 먼저 하겠다고 우겨선 안 돼요. 직원에게 주문할 땐 ‘드시고 가시나요?’ 물어봐도 ‘김밥 세 줄 주세요’ 하고 다음에 답할 수도 있지만 기계에 ‘난 김밥 먹을 거라고’ 해봐야 소용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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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못하고 매장을 나온 적도 있죠. 밖에서 보고 키오스크만 있으면 안 들어가요. 겁이 나서요. 정할 건 많은데 뒤에 줄이 서 있으니 마음은 급해지고…. 혼동되면 더 못해요. ‘미안한데 이 다음을 모르겠다’며 뒷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바쁠 땐 나 때문에 방해될까 미안해서 시도도 안 해요.”
김중현씨(80)는 집 근처 신촌에서 지나쳤던 수많은 커피숍, 식당, 디저트 가게를 떠올리며 수업을 신청했다고 한다. 커피숍을 운영하며 반평생을 보낸 이 번화가가 그토록 생경한 공간이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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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80이면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잖아요. 그런 데다 세상까지 못 따라가니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 굉장히 외로워져요. 적응이 안 되니까 자신감도 잃게 되죠. 옛날에는 ‘못한다’ ‘안 된다’는 걸 못 느꼈어요. ‘다른 사람도 하는데 왜 못하나’ 이런 마음으로 평생 세상을 따라 살았거든요. 지금은 시대나 문화가 너무 빨리 변해 전혀 따라가지 못하겠어요. 자꾸 포기하게 되니 답답해서 혼자 울기도 해요. 저한테 이런 게 너무 큰 장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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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속도에 밀려난 이들이 퇴적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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