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한국 뉴스를 보면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2012년, 그야말로 21세기를 살고 있음에도, 오히려 한국 사회는 과거보다도 더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린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신념과 가치관이 다른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다른 신념과 가치관이 서로 부딪히기도 하면서, 또 서로를 보완해 가면서, 결국은 더 나은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믿는다.
당연히 그렇게 다른 신념과 가치관들은 서로 충돌할 수 있고, 때로는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집권 정부의 정책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려 들면 즉각 ‘종북좌파’, ‘빨갱이’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를 덧씌우려는 것 같다.
단지 집권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다. 기존의 관습이나 어느새 제도화되고 구조화된 잘못된 관행들을 바꾸자고 하면 거기에다가도 ‘종북좌파’, ‘빨갱이’를 덧씌운다.
지금 한국은 크게 두 패로 갈려 있는 것 같다. 틈만 나면 상대방을 ‘종북좌파’, ‘빨갱이’로 몰아가려는 이들과, 틈만 나면 이렇게 ‘종북좌파’, ‘빨갱이’ 소리를 듣는 이들.
이건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대립 구도다. 당장 이곳 영국에서만 봐도,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아니면 잘못된 관습이나 관행을 비판한다고 공산주의자나 빨갱이로 모는 법은 절대 없다. 아마 영국에서 그랬다가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아무리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는 해도,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아마 실제로 그렇게 북한을 찬양하는 이들이나 한국을 분열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불순한 세력들이 분명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종북좌파’, ‘빨갱이’ 낙인을 찍어버린 그 사람들이 모두 그런 불순한 세력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정말 궁금하다, 왜 그들에게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잘못된 관습을 바꾸자는 의견이 곧 북한을 찬양하는 소리로 들리는지.
오히려 그렇게 다양한 의견과 비판들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짓이 아닌가?
내 친구들 중에도, 또 내 지인들 중에도 한국 정부의 정책을, 또 한국 사회의 잘못된 관습을 비판하고, 심지어 거기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북한을 찬양하거나 공산주의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내 나라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는 것과, 북한을 찬양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고 그것들을 고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북한을 증오하고 공산주의를 극렬히 반대하는 게 얼마든지 동시에 가능한 일인데, 왜 그들은 정부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이들을 ‘종북좌파’, ‘빨갱이’라고 부르지 못해서 안달이 났는지 당췌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어쩌면 이 색깔론은 실제로 한국 사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진짜 종북세력이나 빨갱이를 견제하기 보다는, 기득권층 혹은 부패한 세력들의 안위를 보전하기 위한 용도로 악용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기득권층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부패한 세력들에 대항하려는 이들을 무조건 ‘종북좌파’, ‘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불순한 게 아닐까?
어떤 일을 놓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또 토론하면서 최선의 방향을 찾아나가면 된다. 어느 쪽이든 누가 봐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잘못이 있거나 오류가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고, 고치면 된다. 잘못이나 오류가 없다면 대화와 토론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면 된다. 여기서 ‘종북’, ‘빨갱이’ 타령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갈등을 빚을지언정, 어쨌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국가와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결국에는 힘을 합쳐야 할진대, ‘종북좌파’, ‘빨갱이’ 타령이나 하고 있는 게 얼마나 퇴보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인가?
한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나와 너의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나는 보수고 너는 진보라고 해서 서로 정말 죽이기라도 해야 하는 악한 관계는 아니지 않은가?
정치인들이 ‘종북좌파’, ‘빨갱이’ 타령하는 것도 보기 싫은데, 요즘 일부 극우주의 목사들이 오히려 정치인들보다도 더 과격하게 ‘종북좌파’, ‘빨갱이’ 타령을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암울해진다.
최근에도 한 3.1절 기념 행사에서 극우주의 목사들이 모여서 기독교가 빨갱이를 퇴치하고 종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며 핏대를 세웠다고 한다.
이 행사에서 설교를 맡은 목사는 북한의 정권세습을 맹렬히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은 대형교회를 자녀에게 세습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계시지도 않으셨겠지만, 계셨더라도 자칭 목사라는 자들의 입에서 이런 얘기들을 들으셨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지.
더욱이 올해는 중요한 선거들이 있어서 이러한 색깔론으로 인한 갈등은 더욱 깊어질 텐데, 도대체 이런 현상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21세기 전 세계 어느 선진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빨갱이 타령이 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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