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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이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경쟁적으로 방어하려는 ‘역(逆)환율전쟁’을 펼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빠르게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데 따른 여파다. 달러 강세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과 자본 유출을 우려한 국가들이 환율 방어에 뛰어들었다.
블룸버그통신은 강달러 현상이 외환시장의 역환율전쟁을 불러일으켰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통화 가치를 낮추는 과거와는 상반된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거침없이 치솟는 물가를 억누르기 위해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도 마다하지 않는 Fed를 따라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다음달 11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계획이다. 유로존의 ‘제로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는 얘기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1.2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0.5%포인트 인상은 20년 만이다. 멕시코는 0.75%포인트 금리 인상(연 7.0%→7.75%)을 단행했다. 지난 16일 스위스 중앙은행은 예고 없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높였다. 영국은 같은 날 다섯 차례 연속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한국은행은 작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1.25%포인트 올렸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1.75%로 미국과 같다.
최근 달러화 가치가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른 것이 연쇄 금리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자국 통화 가치가 낮아지면 수입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더 부추길 수 있다. 각국은 화폐 가치를 높여 수입 물가를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마이클 케이힐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지금처럼 통화 강세를 위해 공격적으로 나섰던 때는 없었다”며 “금리 인상 경쟁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물가잡기 총력"…각국 앞다퉈 금리 올리며 각자도생
韓, 내달 금리 0.5%P 인상 전망…"승자 없는 제로섬 게임될 것"
달러화 강세로 주요 국가의 화폐 가치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통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로 떨어진 엔화가 대표적이다. 엔·달러 환율은 최근 달러당 135엔까지 상승(엔화 가치 하락)했다. 지난 23일 기준 유로·달러 환율은 달러당 0.95유로로 연초 대비 7.36% 상승했다.
세계 각국이 대거 통화 가치를 관리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최근 들어 찾아볼 수 없었다. 1985년 이뤄진 이른바 ‘플라자 합의’가 최신 사례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당시 미국은 달러화 강세로 무역적자가 심화하자 뉴욕 플라자호텔에 영국 프랑스 일본 등 5개국 재무장관을 불러 모아 달러 평가절하(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평가절상)에 합의했다.
각국이 미국 중앙은행(Fed)을 추격하며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는 불분명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 재무부와 Fed에서 근무했던 나단 시츠 씨티그룹 글로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환율이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인 ‘통과율(pass-through rate)’은 미미하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역환율 전쟁은 위험한 게임”이라며 “이대로 방치하면 수출에 의존하는 제조업체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역환율 전쟁의 결과는 ‘제로섬(승패 합계 0)’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화폐 가치 절상에 성공한 승자가 나왔다는 것은 패자도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앨런 러스킨 도이체방크 수석국제전략가는 “모든 나라가 같은 것(자국 화폐 가치 절상)을 원한다”며 “외환시장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환율 개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마크 소벨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 의장은 “환율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매우 변덕스럽고 성과가 없는 일”이라며 “정책 선택(금리 인상 등)에 대해 외환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