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드 엠스 Bad Ems에서 흙을 빚는 도예가 신유경 – 2
„나는 나의 생각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바뀐 나의 삶과 취향이 새로운 재료를 만나게 하는 설레는 경험을 하게 했다. 상감 (도자의 표면에 무늬를 양각한 후에 그 속에 다른 색의 흙을 넣어 문양이 드러나게 하는 기법)을 응용한 표면장식이나 어두운 태토胎土 위에 화장토 (도자를 굽기 전에 표면에 바르는 색이 입혀진 흙물)를 바르거나 담그는 등의 전통 분청기법을 현대적으로 풀어나가는 등의 새로운 시도가 그것이다. “ 2021, 작가노트
한국과 독일에서 학업을 마친 후에, 독일에서 활동하며 일상을 이어가는 도예가 신유경은 여성의 역할에도 충실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기간을 „공백기“라고 표현한 그는 이 시간 동안에 도자예술에 관한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한다. 어찌 보면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과 도자예술의 세계를 바라본 시간일 듯하다. 그는 손바느질을 하듯 흙가래를 사용하여 한 줄 한 줄 쌓아 올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도자공예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물인 화병, 수반, 잔, 접시, 밥공기, 국그릇…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용품들이다.
벨기에 도예가인 피터 스톡만스 Pieter Stockmans는 자신이 디자인하여 만드는 백자 그릇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드는 그릇에는 숨겨진 형태가 있다. 그릇 위에 음식이 올려지는 순간,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나는 항상 반쪽 형상의 그릇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리사는 나의 그릇이 완벽한 형태의 그릇이 되도록 마무리한다. “
스톡만스의 말을 공감해보며, 그릇의 빈 공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신유경 작가의 그릇에는 도예가의 손길과 요리사의 마음이 모두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말 중에서 ‚자연스러운 공백기‘ 혹은 ‚내조‘를 떠올려 보면, 이어지는 삶의 과정에서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하나 라는 생각을 그는 깊이 한 것 같다. 여성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역할에 중점을 두었다가, 다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중점을 옮겨 그 일을 실천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빚은 그릇에 음식을 담아 아이들에게 먹이는 장면을 가끔씩 SNS를 통해 보여주는데, 도예가와 요리사인 그의 손길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며, 가족과 자신의 일과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이 똑바르고 정확한 ‘꼴’을 못 보고 너무 완벽해 보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에 자연스러운, 편한 선을 나는 좋아한다. 누가 뭐라해도 내가 좋으면 좋다는 사치스러운 생각을 하며 작업하면, 그리 행복할 수 없다.” 2021, 작가노트
신유경이 흙으로 빚은 용기들의 형상은 편안하다는 느낌이다. 직선으로 보이는 외형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긴 곡선 상의 어느 부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도자 표면에서 눈에 뜨이는 기하학적인 형상의 자그마한 구멍은 그의 말대로 숨을 트이게 한다. 필요한 부분에 투각을 하여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느낌을 도자에 담아내고 있다.
빚어 놓은 도자 표면에 하얀색의 흙물을 붓을 사용하여 입히는 „분청기법“의 장식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른 잔잔하고 매끄럽지 않은 자취를 드러내 준다. 그는 만들어진 형상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부족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는지, 간혹은 흙을 덧붙여서 평범한 형상을 색다르게 마무리하기도 한다. 이 색다르다는 느낌이 바로 그가 말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함이 아닐까 한다. 작게 뚫어 놓은 세모, 네모, 원형의 구멍, 둥글게 빚어 손잡이처럼 붙여진 장식, 직선인 듯 곡선인 듯 흐르는 형태 등은 보는 이들에게 작가가 전해주는 편안한 느낌을 인식하도록 해준다.
프레헨 도자축제 Frechener Toefermarkt
올해로 47번째로 개최되는, 도자박물관 케라미온이 주관하는 프레헨 도자축제는 유럽의 현대도예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필자가 경험한 8,90년대의 도자축제에는 수많은 젊은 도예가들이 참석하였는데, 그들은 당시에 이미 작가로 주목받고 있었거나, 중견작가로 성장하게 된다.
참가 작가로 지정되는 자체가 도예가에게는 큰 의미였던 프레헨 도자축제에 신유경 작가가 2022년에 처음으로 참여하였다. 하루하루 일상의 생각을 흙을 통해 풀어내어 빚어 놓은 용기들은 바라볼 수도 있고, 음식을 담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작가의 일상의 한 부분이다. 단순하고 편안해 보이는 형상과 회백색의 표면에 은은하게 드러나는 손가락 자취가 만들어내는 잔잔한 문양은 올해의 도자축제에서 색다르게 다가왔는지, 그의 도자들 앞에서 머무는 이들이 많았고, 두 손에 담아 만져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도자는 만져보고 싶은 느낌을 자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필자는 가지고 있기에 그의 작품들은 성공적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타지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나의 손을 탄 작업들은 그리움이 묻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문화를 보고 배우고 자란 젊은 도예가가 독일이라는 세상,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는 나의 도자기. 타
문화에 섞여 살지만 결코 섞여지지 않는 한국적 취향. 30대 막바지에 들어선 한국인으로 서양의 문화를 경험하며 도예가이자 아내와 어머니로 활동하는 지금의 나는, 현재를 살아가며, 변화하는 삶과 도자작업 사이에 맥락 있는 감성적 자극을 남기고자 한다.” 2022, 작가노트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며, 흙과 대화하는 마음으로 빚어 그릇으로,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신유경은 아직 젊다. 앞으로 그의 일상이 어떻게 채워지는지는 가족들의 활동 범위에 따라 함께 변화할 것이고, 그가 빚어내는 도자 역시 변화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도예가 신유경의 도자 작품을 바라보며, 그가 흙을 통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 전시가 앞으로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필자의 마음을 그에게 전한다.
신유경: youky.sin@gmail.com
인스타그램: Youky.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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