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오감으로 세상을 인지(認知)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인지하는 것이 다 다릅니다.
제가 강의를 할 때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청강하시는 여러분들이 저를 누구나 똑같이 볼까요, 다 다르게 볼까요 하고 물으면 다 다르게 본다고 말합니다. 나의 실제 모습은 하나인데 왜 다 다르게 볼까요, 그렇다면 여러분 중 한 분은 나의 실체를 보고 있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답을 잘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저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강의실 공간도 다 다르게 본다고 말합니다. 무한한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 일체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사람마다 다 다르게 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실체를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성현들의 말씀이 기록된 경전은 어떨까요? 사람들이 다 같게 볼까요 다르게 볼까요 하고 물으면 이제는 쉽게 답을 합니다. 경전도 사람마다 제각각으로 본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은 어떨까요? 사람마다 제각각으로 봅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나’라고 하는 존재는 어떠할까요? 나는 세상도 만상도 경전도 신도 모두 내 멋대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도 내 멋대로 인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실체는 하나인데 사람마다 제각각으로 본다는 것은 모두 허상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허상은 자기 마음이 지은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어 즐거운 사람은 온 세상과 사물이 즐겁게 보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좋지 않은 일이 있는지 침울합니다. 그 사람이 보는 세상과 사물은 침울하게 보입니다. 세상은 즐겁지도 침울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은 그냥 있는데 즐거운 사람은 즐거운 마음이 지은 세상에 있고 침울한 사람은 침울한 마음이 지은 세상에 있습니다. 누구나, 언제나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기 마음이 지은 ‘마음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이 지은 세상은 실제 있는 세상이 아니고 허상의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나’라는 존재도 허상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있는 공간을 인지하는 순간 그 인지한 공간에 있고, 동시에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물과 일어나는 현상들을 인지하는 순간 그 인지한 사물과 함께 있습니다(즐거운 마음으로 즐겁게 보는 공간 속에서 즐겁게 보이는 사물과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있는 ‘나’도 스스로 인지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오감으로 인지하는 것들을 마음에 담아놓습니다. 고향도, 초중고대학 학창시절도, 결혼 생활과 직장생활도 어느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마음에 담아놓습니다. 모든 사연과 모든 인연과 장소를 모두 담아놓고 자기가 경험한 우주와 세상을 모두 마치 사진기로 사진을 찍듯 찍어서 마음에 담아 놓았습니다. 그렇게 오감으로 인지하여(찍어) 담아 놓은 것들은 모두 제멋대로 인지한 것들입니다. 매 순간 인지한 것들과 함께 인지한 공간 속에서 스스로 인지한 ‘나’가 살아 왔습니다. 허상인 ‘나’가 허상의 세상에서 살아왔고 현재도 그러합니다. 허상은 없는 것인데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영원히 소멸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