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도예가, 키라 슈피커 Kyra Spieker - 1
무한한 공간 안에서…
작가와의 인연
독일 중부 서쪽숲 지방, 전통도자로 유명한 도시, 훼르 그렌츠하우젠 Hoehr-Grenzhausen에 자리잡고 있는 대학에서 같은 기간동안, 슈피커 작가는 예술도자를, 필자는 요업공학을 공부했다. 이 지방에는 유리, 도기 등의 제품을 생산하는 유명한 산업도자 회사와 맥주잔을 비롯한 다양한 생활도자를 전통 방식으로 제작하는 크고 작은 공방이 가득했다.
졸업 후, 필자는 다시 예술도자 세계에서 활동하며, 당시의 슈피커 작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고, 인상적인 작품으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벨기에에서의 이십여 년의 타국 생활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필자는 그동안 간간이 도예지에 기고하였던 도자예술에 관한 글을 주기적으로 작성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자박물관 케라미온 Keramion“을 오랜만에 찾아가 보니 그의 작품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설렘을 안고 방문하게 된 도자 박물관에서 만난 키라 슈피커의 작품 전시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경력과 활동
도예가 슈피커는 1957년에 독일에서 태어났고, 훼르 그렌츠하우젠과 마인츠의 구텐베르크 대학에서 각각 도예를 전공하였는데, 그 시대의 중견작가인 폴커 엘방어 Volker Ellwanger 교수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1987년에 젊은 도예가를 위한 리하르트 밤피 공모전에서 수상하였고, 이어서 독일 내의 여러 도시에서 수여하는 장학금을 받으며 도자 예술을 위한 공부를 진행했다. 졸업 후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여 전업작가로 활발한 활동과 함께, 자신의 모교에서 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같은 시대에 활동하는 독일의 현대 도예가들이 함께 형성하여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Gruppe 83“의 회원이며, Academie Intenationale de la Ceramique, Genf의 회원이기도 하다.
만남
미리 시간 약속을 한 후, 전시가 진행되던 어느 날, 케라미온에서 작가를 만났고, 달라진 작가의 모습을 보며, 필자의 살아온 시간을 인식하며, 세월의 흐름을 함께 느껴 보았다. 그는 이곳에서 개최하는 개인전이 자신의 도예의 길을 풍요롭게 해주는 영광스럽고 뜻깊은 자리라는 말을 시작으로 전시장에 펼쳐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새로운 시도
슈피커 작가의 1990년대 작품은 비대칭 형상의 조각작품에 더 가까운 분위기로서, 그 당시 도자예술 세계를 놀라게 하는 동시에 물레성형의 형태에 익숙해져 있는 관람객의 시각을 조금은 불편하게 만들었다. 독일의 현대도예 세계는 오랜 시간 동안 물레성형으로 제작된 대칭 형상의 도자와 다양한 색채 유약의 효과를 보여주는 작품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표현한 날카로운 선과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는 면의 조화와 계산된 듯한 기하학적인 사각형의 체계로 이루어진 작품은 안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가져다주지만, 불안감은 자아내지 않는다는 평을 받으며, 특이한 형상과 제작기법을 갖춘 새로운 형식의 도자로 인식되었고, 도예 전문가와 수집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초기 작품의 대부분을 흙판을 사용하여 판조립 방법으로 제작하였다. 반듯한 면을 둥글게 만들고, 가장자리를 사선으로 잘라내어 좁은 면으로 처리하거나 변형시킨 면을 이어 붙여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은 단순해 보이지만, 잘라진 면과 그로 인해 생겨난 예리한 선은 공간 속으로 이어지며, 퍼져 나가 무한을 느끼게 해주고, 작품이 놓여 있는 주변 공간을 인식시켜 거대한 입체를 상상하게 만들어 준다는 평을 받았다.
표현의 방법과 재료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며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동動“, 율동적인 움직임이다. 평평한 판을 살짝 둥글리거나 두께를 볼 수 있도록 가장자리를 잘라내어 면으로 보여주는 등의 작은 차원에서 행해진 분리와 변형 그리고 연결은 존재하지 않은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게 하는 커다란 효과가 있다.
소성 온도에 따라 경도가 달라지는 도자의 주재료인 적토, 백토는 물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여러가지 소재를 사용하였는데, 이미 구워진 오래된 벽돌, 플라스틱, 아크릴유리, 비닐거울, 종이 등 그가 자신의 생각을 삼차원의 형상으로 제작하기 위해 활용한 재료의 종류는 다양하다.
작품 예시
그는 일반 벽돌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벽돌을 이어 붙여 사각형의 입체 형상을 완성시킨 후에 귀퉁이 부분을 사선으로 잘라내어 삼각형의 공간이 드러나도록 한다. 이렇게 준비된 형상을 쌓아 올려 잘라진 부분이 맞닿으며 이루어지는 기하학적인 공간을 연출하는데, 이런 효과를 자아내는 작품은 건축가인 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받은 듯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어려서부터 그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건축현장을 둘러보는 일을 놀이처럼 행했다고 하니, 무의식적으로 얻은 다양한 공간에 대한 감각들이 작가의 내면에 자리잡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는 백토를 이용하여 많은 백자 추상 작품을 보여준다. 주로 선과 면이 강조된, 내부가 열려 있거나 닫혀 있는 작은 입체적인 형상을 가로 세로로 연결하여 조화시키는 방법이다. 직선이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내도록 쌓거나, 물결을 연상시키는 곡선의 흐름을 형상에 담아 정靜과 동動의 만남을 통한 “무한“이라는 연속성을 표현하고 있다. 곡선과 직선으로 연결되어 면을 형성하는 입체를 이어 나가거나 자유롭게 배치시키며 그룹을 형성하기도 한다. 부분이 전체가 되며 그 전체가 또 다른 부분이 되어, 끝없이 이어갈 수 있다는 암시를 준다. 더불어, 정방형으로 제작된 하나의 추상적인 형상을 다른 물질로 제작된 형상과 조화시켜 건축적인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빛과 색채
내부가 비어진 형상의 양쪽면에 색채 유약을 입힌 후에 빛에 의해 유약색이 강조되는 효과를 시도하거나, 유약을 다른 물질로 대체하는데, 예를 들면, 비닐거울을 부착시켜 주변의 사물과 빛에 의해 형성되는 반사효과를 강조하여 보여준다. 빛이 더해지면 4차원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라며 도자예술의 영역에 변화를 가해주는 강한 요소가 ‚빛‘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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