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 예술칼럼

“난 예술을 나의 구원과 필요로서 껴안았다” - 니키 드 생팔 2

by 편집부 posted May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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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350

“난 예술을 나의 구원과 필요로서 껴안았다” - 니키 드 생팔 2

 

2. “비밀은 없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1930-2002)은 작품에서 모든 감정과 생각, 회상, 경험들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작품속에서 변형되어 다른 형태, 다른 색깔, 다른 질감이 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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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i de Saint Phalle in her studio at Soisy, surrounded by Le Mangeur  d"Enfants, La Mariée sous l"Arbre, and Le Cheval et la Mariée. Photo: © Monique Jacot

 

 

그녀의 엄청난 기쁨, 욕망, 비극, 그리고 고통,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삶 자체였다. 그녀는 말했다. “비밀은 없다. 나는 그 어디에도 숨지 않는다.” 이처럼,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아마 평생을 정신병원에 격리된 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짧은 기간만 정신병원 신세를 졌고, 열 번의 전기

쇼크면 충분했다. 나는 예술을 나의 구원으로 그리고 필연으로 얼싸안았다.” -니키 드 생팔 -

 

그녀는 왜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그녀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무엇으로부터 살기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일까?

 

1) 트라우마

그녀는 프랑스의 지방귀족인 아버지와 미국의 부유층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이 되던 해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그녀는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신을 비판하며 학교 조각상의 성기 부분을 붉은 색으로 칠하는 등 특이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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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 자서전에 있는 자신을 드린 드로잉 (사진출처: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이 작품의 오른쪽 부분은 여러가지 색을 칠해서 생생하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왼쪽은 검은색으로 칠해 반대편과 대조적으로 어두운 느낌이 든다. 이것은 그녀의 평범한 자신과 평범하지 않은 자신, 즉 그녀의 양면적 정서를 가진 자아상이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증오라는 극단적으로 대립된 이중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자신이 정상이 아닐까봐 몹시 불안했다. 성폭행으로 겪은 정신적 충격으로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냉정하고 권위적인 어머니로부터 받은 또 다른 깊은 상처때문에 아버지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면서 애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엄마가 하는 모든 말들은 바로 내 존재의 본질을 위협했고 내 영혼에서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에게서도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 난 당신을 위해 세상을 정복했어요. 당신은 내게 필요한 어머니였어요.” 그녀는 엄마의 부족한 애정과 관심에 그녀를 원망하면서도 그것을 미치도록 갈구하며 많은 그리움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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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i de Saint Phalle, The Devouring Mother, 1972 ©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1942년 어느 여름 날, 그녀는 시골길에서 살모사 무리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때 죽음의 공포를 맛보았다고 자서전에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에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그녀는 이 사건을 뱀의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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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i de Saint Phalle, AIDS IS HERE… LET US CARE FOR OURSELVES!, 1988 ©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그녀는 자신이 뱀의 공포와 함께 태어났나고 했지만, 또한 자신이 뱀들의 민첩함과 번뜩임 같은 내재된 미스터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뱀은 그녀에게 삶 그 자체이자 태고의 힘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뱀을 그리고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공포를 즐거움으로 변형시켰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예술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녀는 미술을 공식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다. 그저 살기위해서 예술을 선택했던 것이다.

 

“1961년에 나는 총을 쏘아댔다. 아빠, 평범한 남자, 위대한 남자, 중요한 남자,

뚱뚱한 남자, 그냥 남자, 내 오빠, 사회, 교회, 의회, 학교, 내 가족, 내 엄마, 나

자신을 향하여, 모든 남자들을 향하여. 나는 쏘았다,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주 끝내주는 감정을 주기 때문에. 나는 그림들을 죽여버렸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이었다. 희생자 없는 전쟁이었다.”    - 니키 드 생팔 -

 

Niki de Saint Phalle shooting Autel, 25 November 1970.png

Niki de Saint Phalle shooting Autel, 25 November 1970. Photo: Shunk-Kender © J. Paul Getty Trust.

그녀는 이렇게 폭력과 환희, 그리고 유머와 완고함 등 다양한 자신의 감정을 승화시켜 작품을 만들었다.

 

Niki de Saint Phalle, Dear Clarice, 1983.jpg

Niki de Saint Phalle, Dear Clarice, 1983 ©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2) 새로운 만남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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