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354
“당신은 새 시대의 맨 앞에 서 있습니다.” – 힐마 아프 클린트3
3. ‘다섯(the Five)’
힐마 아프 클린트는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동료들과 함께 ‘the Five’ 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20년간 매주 금요일마다 모임을 가졌다. 5명의 여성들은 신지학(Theosophy)적 가르침과 심령주의를 결합한 초자연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깊은 기도, 명상 상태에서 천상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다른 세계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봤다.
그들 모임은 기도와 명상뿐만 아니라, 설교, 신약 성경의 검토와 분석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영혼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의식을 반복했으며 그 과정을 손이 움직여지는 대로 드로잉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치 현미경 속에서 꿈틀거리는 세포처럼 보이는, 또는 꽃잎같기도 하고 풍선인형같이 보이기도 하는 암호같은 그림들이 그들의 기도 모임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Hilma af Klint, The Ten Largest, No. 4, Youth, 1907 © Stiftelsen Hilma af Klints Verk (사진출처:Wikimedia Commons)
이렇게해서 힐마 아프 클린트의 예술은 추상적이면서도 상당히 영적인(spiritual) 것이었다.
사실 급격한 산업화로 삶이 피폐해지면서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등 동시대 다른 예술가들도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었다. 예술가들은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스스로 영매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이 우주와 같은 큰 존재로부터 받은 메세지를 예술로 구현했다.
또한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뉴먼과 로스코도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자신들의 그림을 내용이 없는 형식주의 회화라고 했을때 이것을 반박하면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좋은 회화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주제가 결정적이며, 비극적이고 영원한 주제만이 타당하다고 단언한다. 그것이 우리가 원시나 태고의 예술과 영적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고 고백하는 이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이 영적인(spiritual) 존재들이었다.
Hilma af Klint, The Ten Largest, No. 9, Old Age,1907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힐마도 깊이 기도하고 명상을 하면서 영의 세계와 만나게 됐고 그들의 메시지를 받는 영매가 됐다. 1891년 가을 처음으로 영매가 된 그녀는 “거대한 힘이 자신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것을 경험했다.
“당신은 새 시대의 맨 앞에 서 있습니다.”
그녀는 영적 세계의 가이드가 그녀에게 해준 이 말을 믿었다.
그녀는 강령회에서 게오르그, 그레고르, 지드로, 에스터, 아말리엘, 아난다 같은 이름의 영적 존재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요청에 따라 그저 손에 쥔 연필을 움직였다. 그랬더니 캔버스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선이나 원, 타원 같은 기하학 형태에서 꽃과 나뭇잎, 아메바 같은 생물학적 형태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그야말로 다양했다.
1906년부터 시작된 ‘신전을 위한 회화’ 연작은 무려 193점이나 제작되었다.
Hilma af Klint, Group I, Primordial Chaos,1906–07 (사진출처: The Guggenheim Museum)
힐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20년이 지나 45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나선형으로 생긴 신전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라’는 영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들은대로 그렇게 신전에 들어갈 그림들을 그렸다.
이때 그녀는 인생의 여러 계절을 나타내는 거대한 작품 10개를 40일 만에 그렸고 그것을 마침내 2018년 나선형 구조의 구겐하임 전시장에서 선보였다.
그런데, 4일에 ‘321 * 240 cm’의 큰 사이즈 그림 1편씩을 그려서 40일만에 10개의 대작을 완성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도 모양, 색깔, 구성면에 있어서 아주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은 그림들을 말이다.
Hilma af Klint, The Ten Largest No.1, Childhood, 1907, 322 * 239 cm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152cm 의 작은 체구로 조수도 없이 그녀는 어떻게 이런 대작을 혼자서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큰 그림을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서서 사흘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다가 쓰러져 자고, 또 다시 일어나 사흘간을 그리다가 쓰러져 자고, 이것을 반복하면서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이런 그리는 과정은 아주 쉽고 행복하기만 했다. 1908년에는 무려 118점의 대형 회화를 연달아 완성한 후 쓰러졌다고 한다.
Hilma af Klint, Group V, The Seven-Pointed Star, No. 1,1908 © The Guggenheim Museum and Foundation
그녀가 이렇게 무리하게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저명한 신지학자이자 철학자이면서 비평가였던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슈타이너는 기꺼이 그녀의 초대에 응했고 당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그림들을 보았다.
“앞으로 50년 동안 그 누구도 이 그림들을 봐서는 안 됩니다”라고 그는 힐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녀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 할거라고 덧붙였다.
당연히 이런 충격적인 조언에 힐마는 아주 실망했다. 그녀는 이후 4년 동안은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4년 후 그녀는 다시 붓을 들고 자신만을 길을 걷기로 결심을 한다. 그녀는 혼자 시골에서 은둔해 살면서 그림을 그렸다.
1922년부터 힐마는 물을 적시거나 뿌려서 축축한 밑바탕에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을 덧칠해서 번지는 효과를 얻고자 사용하는 나스 인 나스 기법을 쓰는 수채화로 작업을 했다.
Hilma af Klint, Wheat and Wormwood, 1922 (사진출처: Wikiart)
1941년까지 400점 이상의 작품이 이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이후에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의견에는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그림에만 자신을 맡겼다.
마침내 그녀는 기존의 예술의 틀을 깨는 새로운 형태의 그림을 우리들에게 약 1,000점이나 남기고 81세의 나이로 1944년 세상을 떠났다.
21세기 지금 예술적, 정신적, 정치적, 과학적 시스템에서, 모더니스트의 광범위한 맥락 속에서 그녀의 작품은 ‘새 시대를 열었다’라는 말과 함께 드디어 이해받기 시작했다.
Hilma af Klint, The Ten Largest No. 10, Old Age, 1907
큰 정사각형에 다시 세분화된 정사각형들을 그녀는 빨강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채웠다. 꽃이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또 빛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옅은 노랑색이 그림 전체에 퍼져있다. 그리고 꼬불꼬불한 머리결같은 악보 음표들이 물결치는 곡선이 되어 대칭을 이루며 춤을 추고 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 그림은 10개의 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우리가 죽기 바로 전의 삶을 나타낸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도 무섭기는 커녕 너무나도 평화롭고 따뜻하다. 마치 아름다운 우리네들 삶을 뒤로 하고 유쾌하고 즐거운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