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363
페르소나에 대한 고찰; 신디 셔먼 3
3. 페르소나
1) 분장 놀이
신디 셔먼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진 속 모든 공간을 연출하고 자신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분장해서 렌즈 앞에 서 곤했다.
셔먼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들이 많은 집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고 그때부터 스스로 분장을 하면서 놀았다. 그런데, 이것은 네 명이나 되는 형제자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셔먼은 나이 차가 아홉 살, 열아홉 살씩 나는 자신의 형제자매가 한 핏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녀는 뭔가 스스로 다른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컸다.
그런데 예쁘게 꾸미고 싶은 일반적인 여자 아이들과는 달리 셔먼은 괴물이나 할머니의 분장을 즐겨했다. 그녀는 특히 자신과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흉내내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던 그녀는 지금도 셀프 포트레이트의 실험을 통해 걸인, 기형인, 동화 속에 나오는 괴물이나 죽은 사람 등 여러가지 형태의 인간존재의 어두운 부분까지 은유적으로 또 자유자재로 표현하고 있다.
Cindy Sherman (사진출처: Cindy Sherman’s Instagram)
2) 셀럽
Cindy Sherman, Untitled #96, 1981 (사진출처: Art Image Publications)
오렌지 티셔츠에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또 다른 체크무늬 타일 위에 누워있는 이 사진은 2011년 크리스티에서 3.89 million 달러(한화 약 52억)에 팔렸다. 그림에 비해 평가절하되어 있었던 사진이 이렇게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된 것만으로 당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후, 그녀는 마크 제이콥스, 맥, 발렌시아가와 함께 협업 작업도 했다. 발렌시아가를 위해서는 대중 신문 사진속의 중년 모델처럼 옷을 입었고, 또 맥과의 작업에서는 보통 잡지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날씬하고 매끈한 머리결의 모델이 아니라, 전혀 예뻐보이도록 노력하지 않은 모습을 시도했다.
Cindy Sherman, MAC campaign, 2011 (사진출처: SlidePlayer)
셔먼은 독일 영화에 대한 오래된 책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1920년대 영화 스타들을 작업했다. 잡지에서 잘라낸 얼굴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화장하고 사진을 찍었지만, 결과물은 그 원본과 전혀 다르게 나왔다. 하지만, 가끔은 결과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과 닮아서 실존하는 인물이 되기도 했다.
당시 작업을 하면서 셔먼은 여배우들처럼 과장되게 화장하는 걸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늘날까지도 스스로 감독, 배우, 의상 디자이너, 기술자, 무대 디자이너, 소품 당담자, 그리고 아티스트, 사진 편집자 역할까지 모두 동시에 자신이 스스로 수행하고 있다.
Cindy Sherman, Hollywood’s golden age? Untitled #571, 2016
이 작품 속 셔먼은 도대체 어디에 앉아 있는 것일까? 좀 이상한 것이 뒤로는 호수가 보이고, 나무가 우거져 있는데, 도저히 같은 조합으로 보일 수 없어 보이는 모피 이불이 놓여져 있다.
거기에 그녀는 누운 듯 앉은 듯 쓰윽 기대어 있다.
실제로 이 사진 속 공간은 현실이 아니다. 이것은 초록 바탕 앞에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배경을 처리한 것이다. 즉,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서 셔먼은 스타인 척을 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 건가?
아주 진한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신디 셔먼, 할리우드 스타 여배우인 척을 하고 있는 그녀는 사실 엄청난 고가에 작품을 파는 실재 셀럽이다.
3) 페르소나
페르소나(persona)는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자신의 이론에 이 단어를 쓰게 되면서 현재는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심리학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칼 융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말했다. 페르소나를 통해 개인은 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도 있고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성립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페르소나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심리구조와 사회적 요구 간의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주는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하게 된다. 즉, 페르소나를 쓰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거치는 중요한 통과의례인 것이다.
Cindy Sherman, Untitled #613, 2019.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절벽 위 한 도시를 배경으로 의자를 두고 턱시도 자켓에 패턴이 있는 베이지 팬츠를 입고 앉아 있는 한 남자, 아니 여자? 아니면 그냥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가 이런 페르소나(가면)를 쓰는 이유에는 내부적인 욕구와 외부적인 욕구가 있다.
내부적인 욕구, 즉 생명성에 따른 본능적인 욕구, 성장기에 따른 필연적 욕구, 적응과 순응을 위한 관계적 욕구, 그리고 사회적 자기 실현과 같은 자기 표현적 욕구에 따라서 우리는 페르소나(가면)를 쓴다.
다시 말해, 살기 위해서 가면을 쓴다.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에 따라서 적응을 위해 다른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그리고 나아가 사회속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페르소나(가면)를 쓴다.
외부적 욕구로는, 사회에서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도덕, 관습 등과 같은 사회 규범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페르소나(가면)를 쓴다.
프랑스 철학자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 1981)은 "타인은 나의 거울이다"라고
말했다. 즉, 타인이라는 페르소나(가면)을 쓰고 벗으면서 우리는 나 자신을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상황에 따라서 유용한 페르소나(가면)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둘째,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 페르소나로 인해 나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디 셔먼은 사진 속 얼굴들이 자신에게 어떤 탐구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말했다. 사진을 통해 셔먼은 탐험가가 되고 탐정이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이미지에 스스로를 새로 연결지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가발을 쓰고 분장한 사진 속 자신 뒤에 스스로를 아예 지워버렸다.
자신인데 새로운 자신, 또 다른 나, 이런 나와의 만남은 셔먼에게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스스로 억지로 그런 자신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어떤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연출할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했다.
그래서 셔먼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통해 자신이 전혀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를 본 느낌을 받았을 때도 있었다. 이렇게 작품 안에서 자기 자신이 아예 보이지 않았을 때 셔먼은 ‘성공했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쓰고 있는 페르소나(가면)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허무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나를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성장통이다.
그런데, 가면을 벗는 것과 그것을 버리는 것은 다르다. 페르소나(가면)를 쓴다는 것은 그 페르소나(가면)의 모습인 사람을 추적하여 그 사람을 닮아가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 후, 나에게 그 페르소나(가면)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그것을 단지 벗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적당한 가면을 찾아 쓰면 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 가면을 쓰고 벗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과정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그런 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알게 되고, 마침내 나는 진정 나를 위한 꿈을 꿀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4. 예술가의 역할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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