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말과 소를 기른 기관, '사복시' 존재해
《영조실록》 6권, 영조 1년(1725) 6월 21일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흥양(興陽)의 나로도(羅老島)를 다시 태복시(太僕寺)에 예속시키고 목관(牧官)을 설치하였다. 나도로의 목장(牧場)은 폐지된 지 오래 되었다가 기해년(975)에 특별히 제주도(濟州島)의 종마(種馬) 1백80여 필을 사들여 섬에 방목(放牧)하여 왔는데, 이때 이르러 태복시의 계청(啓請)으로 인하여 이 명령이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축을 언제부터 길렀는지는 모르지만, 삼한시대 이전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시대에는 말이 국방상의 이유로 중요시되었는데 이러한 말 목장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실려 있을 정도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대규모의 목마장을 설치하여 말의 개량에 힘쓰기도 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제주도, 강화도, 나로도, 서울의 뚝섬 등 여러 곳에, 나라에서 관할하는 목장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주로 말을 기르기 위한 시설이었다..
▲ 초원을 누비는 제주말(농촌진흥청 제공)
또 말을 기르는 것과 함께 임금에게 바칠 우유, 우락(치즈), 낙죽(우유로 끓인 죽)을 위해 젖 짜는 소를 특별히 길렀는데 ‘사복시(司僕寺)’라는 기관이 담당했다.
1445년 사복시 제조 이사검의 보고에 따르면 군사용으로 길렀던 말은 3만 2,198마리였고, 소는 대략 2만 3,500마리였다고 하니 말에 못지않게 소를 길렀던 것으로 생각된다.
<기사 제공: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선임기자 yanoh@theeuro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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