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을 버리고 ‘표구’를 써야만 하나?
지난 2022년 한 일간지는 “표구, 미술품 보존 기술 넘는 예술”이란 제목으로 《표구의 사회사》라는 책 서평을 실었다. 특히 기사에는 “표구(表具): 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으로부터 ‘표구(表具)’라는 말을 수입해서 쓰는 바람에 비록 한자말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때 쓰던 ‘장황(粧䌙)’이란 말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심지어는 《조선왕조실록》 원본에 ‘장황(粧䌙)’이라 쓰인 것을 국역한답시고 ‘표구’라고 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 서예작품을 장황하는 고 김표영 배첩장의 작업 모습(문화재청)
한국어와 일본어 비교에 정통한 이윤옥 박사에 따르면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100년 전통을 가진 교토 야마기타(山北光運堂) 표구점 누리집에 소개하는 표구역사(表具の歴史)를 보면 ‘표구는 먼 아스카시대의 불교 전래와 함께 건너온 두루마리용 경전에서 유래한다. 이어 불화(佛画)에도 표구가 쓰였다’라고 밝힌다.
또 ”여기서 아스카시대란 서기 592년부터 710년까지 118년 동안을 말하며 552년에 백제 성명왕으로부터 불상, 경전 등이 전해졌는데, 이를 보면 표구 기술의 원조는 한반도라고 해야만 한다.”라고 했다.
이를 본다면 100년 된 표구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본 자존심 앞에 우리 즈믄해(천년)의 자존심 장황이 구겨지는 현실이 된 것이다.
참고로 또 예전에는 오동나무 장롱을 비롯하여 만든 재료에 따라 지장(紙欌), 자개장, 비단장, 화각장, 주칠장(朱漆欌), 죽장(竹欌), 화초장, 화류장, 먹감나무장 등 이름을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한 장롱 종류가 있었고 용도에 따라 버선장, 반닫이, 머릿장, 의걸이장, 문갑, 경상, 궤안, 뒤주, 고비 등등 집안에는 온갖 가구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입식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침대가 놓이고 소파와 책상이 들어오고 방안에 있던 전통가구들은 하나둘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는 ‘다이’니 ‘단스’처럼 일본말로 된 것들이 자리를 잡았다.
<글: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공>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선임기자 yanoh@theeuro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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