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390
정작 그가 작품을 보지 못한다면 그냥 보지 못한 것이다
로버트 어윈 (Robert Irwin)
작품을 보는 관람자는 예술과 함께 떠나게 된다. 즉, 예술을 경험하는 것이다. 특정 경험, 특별한 주의의 대상이 되는 경험 자체가 예술이다.
빛과 공간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미니멀리스트 예술의 선구자였던 로버트 어윈(Robert Irwin, 1926-2023)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각을 지각하게 그리고 자신의 지각을 자각하게 하고 싶었다.
그는 이 문제를 파고들어 사람들이 자신의 의식을 의식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을 위해 고민했다. 그래서 회화의 한계와 조각의 한계가 아니라 이렇게 경험의 한계를 다루면서 마음의 프레임을 다루었다.
이렇게해서 그는 즉각적인 존재를 지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을 탐색했고, 그리하여 대상이 아닌 지각과 경험에 초점을 맞추면서 회화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다.
“회화는 현존, 다시 말해 현상학적 존재에 관한 것이다. 회화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걸 보지 못한다면 그냥 보지 못한 것이다. 그건 거기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면전에 두고 작품 이야기를 한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작품을 보지 못한다면 그냥 보지 못한 것이다...그 시절 이후 내 작품은 모두 현상학적 존재의 탐색이었다.”
로버트 어윈 -
Robert Irwin, Untitled, 1963-65 (사진출처: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이것은 어윈의 1960년대 중반의 점 회화(Dot Paintings) 중 하나다. 그는 회화를 이차적으로 간주했지만, 그렇다고 회화를 완전히 거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미지를 끈기 있게 축소시켜 나갔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이미지가 점점 희미해지다가 사라져가는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지각을 지각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저 하얀 백지에 옅은 파스텔의 큰 점이 있는 이런 그림을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어윈은 그렇다면 그들은 그냥 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을 계속 보기 시작하면 작품은 상상 속 가상의 작품과 정확하고 동일한 현실성을 갖게 된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탐구해오는 바라고 말했다.
Robert Irwin, Untitled,1969 (사진출처:WikiArt)
이게 무슨 말인가?
처음에 위 작품을 보면 하얀 원을 중심으로 회색빛 네잎 클로버 형태가 퍼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하얀 원은 그림이 아니다. 벽으로부터 10㎝가량 떨어져 설치된 볼록한 알루미늄 원반이다. 주위의 회색 원들도 그림이 아니다. 이것은 모두 이 원반의 그림자일 뿐이다.
어윈은 직경 약 150㎝의 원반 위에 흰색 래커를 100겹 이상 분사해서 매끈한 광택 대신 빛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분산시킬 수 있게 오톨도톨한 재질감이 고르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그렇게해서 조명은 정말 완벽하게 동일한 형태의 그림자들이 동일한 명도로 겹쳐져 벽면에 비쳐진다.
Robert Irwin, Untitled, 1967 (사진출처:MutualArt)
이상한 것은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또 이것이 빛의 반사라는 것을 다 알고 봐도 고체인 원반과 조명의 효과일 뿐인 그림자 사이의 밀도 차이를 쉽게 구별할 수가 없다. 원반의 표면은 볼록한 듯 오목하게 보이고, 오목한 듯하다가도 벽에 밀착된 평면처럼 보인다.
어윈은 이런 시각의 착각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
뭐지 싶은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중에는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보고 있는 우리 두 눈의 작용을 느끼게 된다. 과연 우리의 눈은 우리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어윈은 이렇게 작품 자체보다는 사물과 공간, 물질과 환영 사이의 차이를 감지하고 인식하는 지각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자극적인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은 이제 실제로는 아무것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으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질 수도 있기 때문일까?
이런 우리들에게 어윈은 말한다. 자신의 작품이 “당신이 오늘 본 것보다, 내일 조금 더 많이 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그의 말대로, 보고 지각하되 지각하는 것을 자각하는 것.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우리의 눈을 맹신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의심하는데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로버트 어윈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인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의 작품인 미국의 로스앨젤러스에 있는 ‘게티 센터’ 중앙에 위치한 ‘게티 가든’을 떠올릴 것이다.
자연 계곡과 500종 이상의 식물, 연못, 꽃나무 미로, 분수대,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어, 길게 늘어선 나무를 따라 산책하거나 잔디 위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기에 딱 좋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이 정원을 바로 어윈이 설계했다. 그는 설치 미술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티 가든 (사진출처:Getty Museum)
그는 특히 식물, 물 사이의 상호 작용을 탐구하고 끊임없는 변화의 설치로 유명했다. 그런데, 위에서 본 것처럼 그는 처음에 표현주의적인 추상 화가로 작품활동을 했다. 그리고 서서히 선과 점 조각으로 벽에 설치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미니멀리즘의 단계를 거치면서 현상학에 의거하여 관람자의 신체의 이동, 시각의 변화, 공간의 지각 경험에 대한 자신의 예술 개념인 '현상적 예술' 개념을 형성했다.
Robert Irwin, Untitled (Acrylic Column), 1970-71 (사진출처:Flickr)
그는 빛을 활용하여 공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의식을 새롭게 하고 싶었다. 빛과 공간이 융합되는 것을 강조해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조건적 예술' (conditional art)이라고 설명했다.
Robert Irwin, 'Light and Space (Kraftwerk Berlin)', 2021 (사진출처:Pace Gallery)
그는 장소에 인위적 개입을 최대한 피했다. 그리고 원래 장소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나게 해서 관람자가 주체적으로 공간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작업했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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