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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금주령, 벌 받는 건 백성뿐

by 편집부 posted Dec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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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금주령, 벌 받는 건 백성뿐

한성부에서 이뢰기를, "전 군수 한용호(韓用鎬)의 집에서 몰래 술을 빚어 팔고 있으니, 청컨대 잡아다 심문하여 벌을 주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이번에 벼슬아치가 어려움 없이 고의로 죄를 지었으니, 나라에 기강이 있다고 어찌 말할 수 있으며, 백성들이 또 어떻게 법을 두려워하겠느냐? 이렇듯 무엄한 무리는 결코 예사로 처리해서는 안 되니, 한성부가 1차 엄히 벌하고 먼 곳에 유배하라." 하였다. 

이는 《순조실록》 순조 32년(1832년) 윤9월 12일 기록으로 조선시대 큰 가뭄이 들거나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나라에서 술 마시는 것을 금하는 금주령(禁酒令)을 내리곤 했다. 

금주령을 내리는 것은 이 기간 이 기간 몸을 가다듬고 절제함으로써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굶주린 백

 특히, 태종 때는 해마다 내려질 정도였고, 영조 34년에는 큰 흉작으로 궁중의 제사에도 술 대신 차를 쓰는 등 엄격한 금주령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살벌한 금주령이 내려진 영조 때에도 금주령 앞에 희생당하는 건 양반이 아닌 일반 백성이었다. 

1367-문화 1 사진.png

▲ 김후신(金厚臣) <대쾌도(大快圖)>, 자본담채, 크기 33.7 x 28.2 cm, 간송미술재단 소장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 하는 백성은 술을 빚어 팔았다고 잡혀가고, 몰래 술 마셨다고 잡혀가지만, 금주령이 내려진 대낮에도 양반들은 김후신의 <대쾌도> 그림처럼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고 대로를 활보했다.

그에 영조 임금은 ‘금주령을 없애고 술주정하는 것만 금하도록 하라.’ 하라는 명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기사: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공 >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선임기자  yanoh@theeuro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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