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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을 사양한 퇴계의 가르침

by 편집부 posted Dec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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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을 사양한 퇴계의 가르침

 “이황이 고향에 돌아가 누차 상소하여 나이가 들었으므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병이 들었는데 아들 준(寯)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죽으면 예조가 틀림없이 관례에 따라 예식에 따라 장례를 치르도록 할 것인데, 너는 모름지기 내가 죽으며 남긴 뜻이라 말하고 상소를 올려 끝까지 사양하라. 그리고 묘도(墓道)에도 비갈(碑碣, 사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글자를 새겨 세우는 것)을 세우지 말라.‘ 하였다.(가운데 줄임) 그로부터 며칠 뒤 죽었는데 준이 두 번이나 상소하여 예장을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위는 《선조수정실록》 4권, 선조 3년(1570년) 12월 1일 기록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죽음에 관한 얘기이다. 

조선조 중기 명종과 선조 때 살았던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올바른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며 학문과 수양,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아 마침내 최고의 유학자로 추앙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나이가 들자,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려 벼슬을 사양하려 했고, 죽기 전 아들에게 나라에서 조의금이나 장례용품 주면 사양하고 받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다.

요즘 정계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공천 개입 의혹으로 언론에 도배되면서 온통 난리가 아니다. 또 조선시대 지방 수령을 지낸 사람들의 엉터리 공덕비가 곳곳에 있다. 그런 것들에 견주면 벼슬을 내려놓으려 애를 쓴 것은 물론 장례를 치르면서 나랏돈을 받지 말라고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 퇴계 이황은 정치인들과 공직자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는 분이다.

<기사: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공 >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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