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 성균관 대사성 파직시켜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왕권정치의 시대였던 조선시대에도 언로는 살아있었고, 인터넷 소통이 활발한 지금이야말로 정치는 국민만 보는 것이어야
“성균관에서 아뢰기를, ‘재유(齋儒, 성균관에서 숙식하면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권당(捲堂, 성균관 유생들의 집단시위)하고 말하기를, ‘대사성 윤명규(尹命圭)는 (가운데 ᄌᆕᆯ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니, 하교하기를, ’잘 살피지 못하여 또 이런 욕된 일이 있었다. 비록 이 일은 생각이 미치지 못한 탓이겠으나, 이미 나에게까지 알려진 이상 그냥 있을 수만은 없으니, 대사성은 파직하고 여러 유생은 들어가도록 권하라.‘라고 하였다.”
이는 《순조실록》 32권, 순조 31년(1831) 12월 14일 기록이다. 조선시대 으뜸 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 숙식하면서 공부하던 유생들은 국가의 정책이나 당시의 시급한 일에 대한 자신들의 집단의사 표시로서 우선 편전 앞에서 '아이고상소'를 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으면 수업을 거부하고 밥을 먹지 않는 권당(捲堂, 아래 뜻 참조)을 한다. 이래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이젠 모두 집으로 돌아가버린다. 이것은 공관(空館,아래 뜻 참조)이다.
이러면 임금의 통치력에 커다란 결함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일이 된다.
500년 조선 역사를 통해 이 성균관 유생들의 ’권당‘은 무려 96차례나 있었다. 그런데 선조 이전까지는 권당이 억불(抑佛, 불교를 억제) 정책의 철저한 실행을 촉구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사색당파와 관련된 것이 많아 그때는 정치적 붕당이 심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12월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권정치의 시대였던 조선시대에도 언로는 살아있었는데, 인터넷 소통이 활발한 지금이야말로 정치는 국민만 보는 것이어야 하겠다.
** 권당(捲堂)이란 공관(空館)이라고도 한다.
성균관 유생들은 국가의 정책이나 당시의 시무(時務)에 대한 자신들의 집단의사 표시로서 유소를 올리게 되는데, 이에 대한 왕의 회신인 비답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유소의 방법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식사거부의 표시로 학교식당에 들어가지 않는 일종의 동맹휴학인 권당을 행사했다. 이러한 권당이 있으면 동지관사(同知館事)나 대사성에게 보고하고, 이들이 유생들을 집합시켜 권당의 이유를 묻고 이를 위에 상신하게 된다.
이후에도 역시 만족할 만한 왕의 비하(批下)가 내려오지 않고 사태가 악화되면 기숙사에서 물러나는 공재를 행하여 수업이 중단되고, 유생들이 각자의 짐을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성균관을 비우는 공관을 감행하게 된다. 공관이나 권당이 장기화될 경우 조정에서는 개유사(開諭使)를 보내어 이를 수습했다. (다음 백과 사전 인용)
기사: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공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선임기자 yanoh@theeuro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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