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왜 역사를 무시하나?
‘이번에 다르다’ 신드롬 등
경제위기도 예측하지 못한 경제학자들, 왜 반성하지 않을까?
1997년 11월 말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제공받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자금을 일시에 빼내갔고 만기 도래 이후 자금 대출 연장이 되지 않아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이 나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 500억 달러 이상을 빌려왔다.
불과 한 달 전인 10월중,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월가 소식통을 인용하여 우리나라가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하여 비밀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재경원 관계자들은 이를 강력하게 부인하며 블룸버그 통신사를 허위보도 혐의로 제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이후 1998년 IMF 구제금융 청문회가 열려 당시 재경원 관계자들이 거짓말을 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미국에서 교육받았던 수백 명의 경제학자들,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한국전쟁 이후의 최대 위기라 불린 ‘IMF 구제금융 사태’를 알아차릴 수 없었을까? 정확한 예측은 아니더라도 상황이 심각하며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질문이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일부 경제학자나 언론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왜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나? 그리고 위기 이후에도 왜 별로 반성이나 성찰이 없을까?
엘리자베스 2세, ‘왜 아무도 경제위기가 다가옴을 알지 못했나?’
2008년 가을 미국발 경제위기가 유럽과 전 세계에 전이되고 있을 때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는 당시 연회에 참석했던 경제학자들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날고 기는 사람들이 경제학과 경제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아무도 이처럼 거대한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했냐고. 표준적인 대답은 경제학자들 모두 자신들의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보지 못했다는 것.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전기를 출간한 영국의 스키델스키(Lord Skidelsky) 경은 역사를 외면한 결과라고 일침을 놓았다. 즉 경제학이 점차 수리적으로 정교한 모델을 사용하면서 수리적으로 분석이 가능한 이슈를 중점적으로 분석하다 보니 역사에서 멀어졌다는 것. 현실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수리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수리 모델로 분석이 가능한 주제만을 다루는 경향이 점차 자리잡았다는 것.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불었던 튜울립 열풍. 당시 튜울립 한 송이 가격이 집 한 채와 맞먹을 정도로 투기 열풍이 심각했다가 꺼지면서 경제위기가 있었다. 19세기 말 영국과 독일 등 유럽 몇 개국에서의 경제위기, 1930년대의 대공황 등,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경제위기는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그런데도 영국이나 미국 등 상당수의 고등교육 과정에서 경제사는 찬 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수리 모델을 중시하는 경제학 교육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도 많은 학자들은 ‘이번에 다르다’라며 미국같은 선진국에서 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수리적으로 정교한 모델을 사용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했고 파생상품을 개발해 활용하기 때문에 경제위기 발발 위험 가능성이 아주 줄었다는 게 이들의 논리였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의 주장과 정반대가 되었다. 위기에 대비해 만들고 활용한 파생상품이 위기 확산의 주범이 되었다.
유로존 붕괴 외치던 경제학자들 지금 어디에?
2010년 5월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다른 유로존 주변국으로 번지기 시작한 유로존 경제위기 전망도 여러 가지 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게재된 칼럼과 FT에 인용된 전문가들 상당수는 유로존이 붕괴 위험이 높다고 진단했다. 일부 영국 언론은 한 술 더 떠 ‘내가 원래 유로존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어! 봐, 망할거야’라는 논조까지도 갔다. 그러나 현재 유로존은 어떠한가?
앞으로의 전망을 확정적으로 하기 어렵겠지만 일단 유럽중앙은행(ECB)이 1조 유로(우리 돈으로 약 1400조 원) 정도의 유동성을 금융기관에 공급하면서 심각한 위기 국면을 벗어났다.
그렇다면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수석 이코노미스트(chief economist)들이 월급을 주는 기관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위기를 과장할 가능성은 많다. 위기를 과장해야 정책결정자들이 신속하게 위기 대응에 나서고 금융기관들도 돈을 떼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자들은 무엇을 했나? 상대적으로 이런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최근 FT는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핵심은 경제학자들이 이번에 철저히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7년 우리나라의 IMF 구제금융 당시 모 일간지 기자는 통렬한 자기반성의 칼럼을 게재해 반향을 일으켰다. 기자임에도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지 못하고 정부의 말만 믿고 구제금융이 임박했음을 알지 못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왜 학자들은 이런 반성이나 성찰이 매우 부족할까? 철저한 반성이나 성찰이 있어야 학문이나 사회도 발전한다.
안 병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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