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령의 자전거 모험 (1) 덴마크 유로저널 김동령 인턴기자의 유럽 자전거 여행기를 게재합니다.
1. 모험의 서곡은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 안이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있고 나는 이탈리아로 가고 있다. 어두컴컴한 창 밖은 앞으로 나의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어쩌면 일이 년 후의 나의 미래까지도... 이제 나에게 집은 없다. 주소 없는 여행자로 세계 속에 나는 내 던져진 것이다. 이제 나의 집은 텐트이고 이웃은 전 세계 모두가 될 것이다.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새로운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오랜만에 큰 여행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발해서 자전거 타고 약 두세 달 간 덴마크 코펜하겐까지 돌아오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KAIST입학이 결정되고 같이 KAIST에 가게 될 친구와 둘이서 그해 가을에 호주로 배낭여행을 떠나 45일을 여행했고, KAIST 1학년이었던 이듬해엔 포항공대에 같은 시기에 입학한 고등학교 동문 친구와 둘이서 30일 동안 정말 한 푼도 없이 국내 무전여행을 하였다. 이게 2003년이었으니- 나는 03학번이다- 2012년인 지금으로부터 보면 벌써 9년 전이다. 아직도 호주, 국내무전여행 둘 다 모두 생생한데 그래도 오랜만이다.
2010년 가을학기에 덴마크공과대학(DTU, Technical University of Denmark)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지난 2월까지 계속 덴마크에 거주하다가 이제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혹은 취업하여 일에 전념하기 전에 9년만 에 큰 여행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사실 자전거로 유럽 여행하는 것은 덴마크에 오기 전부터 꿈꿔오던 것이었고, 덴마크에 오는 것이 결정되고 나서는 그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었다. 덴마크는 물가가 비싸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 미리 자전거를 하나 구입하여 덴마크에 올 때 가지고 왔다. 게다가 교환학기가 끝나면 2011년 1~2월의 겨울이기 때문에 중학교 때 입고 안 입던 오리털 파카, 스웨터 등도 모두 챙겨왔다. 하지만 계획보다 일년 후인 2012년 2월에 난 지금 시작하고 있다.
지난 두 여행과 더불어 이번 여행을 하게끔 영향을 준 인물이 두 사람 있다. 바로 이찬양씨와 문종성씨다. 호주배낭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는 아직 영어도 못하고 해외 나가본 적도 없고 오래 여행해본 적도 없어서 사실 호주에서의 홈스테이를 고려했었다. 그런데 그 때 여행을 즐겨 하던 -현재는 전문 여행가가 되었지만- 이찬양씨의 홈페이지를 통해 용기를 얻어 긴 배낭여행을 단행하게 됐다. 무전여행 결정 시에도 역시 이찬양씨 홈페이지로부터 많은 용기를 받았다. 그런 이찬양씨가 2007년에 자전거로 세계일주여행을 떠났고, 그의 자전거 세계여행기를 읽으며 역시 엄청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던 도중 2011년 가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자전거 여행 중이던 문종성씨를 만났다. 그로부터 생생하게 들었던 수많은 자전거 여행의 아름다운 일화들은 날 무척이나 감동시켰고 이번 자전거 여행을 결행시키는 결정타가 되었다. 그 아름다운 일화들은 거의 여행 도중 만난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고 나 역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나의 도전에 성공하겠다는 목적의식도 물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삶을 이해하고 배우며 견문을 넓히는데 있다.
그런데 단지 자전거로만 하는 큰 여행이 아니다. 이찬양씨 문종성씨가 그렇듯 나 역시 텐트, 침낭 등 여러 장비와 함께 캠핑하며 여행할 것이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저가항공 이지젯 비행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온 자전거와 덴마크에서 프랑스 친구와 같이 여행할 때 쓰던 텐트, 침낭, 자동충전식 에어매트리스, 중학교때 입던 겨울 옷들 등이 함께 타고 있다. 비행기가 코펜하겐 공항을 뜬지 두 시간이 다 되가 곧 이탈리아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착륙하려 한다. 지금은 2012년 2월 21일 밤 10시 30분경, 나의 서곡도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마치고 이제 나의 모험은 시작된다. 오늘이 모험 첫째 날이다. 2. 채비를 다 갖춘 떠나기 전날 자전거와 장비 모든 걸 도둑맞다니 밀란 말펜사 공항에 도착한 나에겐 짐이 많았다. 자전거를 포장한 자전거 박스, 짐으로 가득 찬 커다란 배낭 그리고 거기에 모자라 한 박스 가득한 짐. 나는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자전거 뒷짐받이는 이미 한국에서 장착해 왔기 때문에 앞패니어(자전거 바퀴 양쪽에 다는 가방)를 달기 위한 앞짐받이를 알아봐야 했고 물론 앞패니어와 뒷패니어도 역시 구입해야 했다. 또한 캠핑스토브 및 가스연료 등 캠핑장비 몇 가지도 준비해야 했다.
따라서 나는 며칠간 밀라노에 머물러야 했는데 도난의 염려 때문에 이 많은 짐들을 호스텔에 놔둔 채로 밖을 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돈을 좀 쓰더라도 채비가 끝나 떠나기 전까지는 한인민박에서 지내기로 했다.
하룻밤에 30유로라니 엄청난 비용이다. 재작년 덴마크에서 만난 교환학생 친구들끼리 셋이서 독일에 여행 갔을 때 두 명만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나는 몰래 들어가 빈 침대에서 이불 없이 자고 아침도 번갈아 가며 먹으며 점심, 저녁 치 빵, 쨈, 햄까지 몰래 싸가지고 나오며 여행하던 나 같은 참으로 저렴한 여행자에게 한식으로 아침상을 차려주는 한인민박은 말 그대로 초호화 호텔이나 다름없었다. -덴마크에서 1.5년 살면서 김치 한 번 사 먹어본 적 없고 한국식당에 내가 먹고 싶어서 간 적도 없다. 연변출신의 한인민박 아줌마 한인민박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 밀라노 도착한 다음날부터 자전거 가게들을 방문하며 자전거장비 가격을 알아보는데 캠핑장비까지 사려면 이게 하루 이틀 안에 바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인민박은 부담이 매우 컸기 때문에 비용이 안 드는 카우치서핑(현지인 집의 소파에서 숙박비 없이 지내며 같이 음식을 해먹거나 이야기 하는 등의 교류를 하는 일. 현지인을 호스트라고 하고 방문하는 여행객을 카우치서퍼라고 한다)을 알아봤고 다행이 호스트를 한 명 찾아서 밀라노 셋째, 넷째 날 밤(즉 모험 셋째, 넷째 날 밤)은 그 호스트 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호스트랑은 나의 모험 넷째 날 밤까지로 약속했는데 모험 다섯째 날이 밀라노 카니발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고 호스트가 나와 같은 또래이고 유쾌해서 호스트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축제 마지막 날 같이 술 마시고 밤새 놀기로 하고 하룻밤 더 있기로 했다. 게다가 며칠 동안 종일 밀라노 자전거 가게만 돌아다니면서 찾은 저렴한 자전거 가게에 맡겨놓은 자전거도 다섯째 날 찾기로 했다. 호스트 올린 호스트의 친구 유린 다섯째 날 자전거를 찾고 스포츠용품점에서 캠핑장비를 구입하고 호스트와 축제를 즐기고 나는 그 다음날 떠나면 되는 것이었다. 장거리 자전거여행에 보통 많이 쓰는 자전거 뒷패니어가 한 쌍에 110유로가 넘었는데 내가 찾은 자전거 가게는 처음보는 브랜드의 가방에 사용이 약간 불편했지만 품질은 좋아 보이고 가격이 50유로밖에 안됐다. 앞뒤 패니어 함께 생각하면 이미 120유로는 절약한 셈이고 게다가 앞짐받이도 다른 데보다 30~50유로는 저렴하게 구입했다. 이동거리 등도 함께 측정해주는 자전거 속도계, 안전을 위한 LED 라이트, 물병 케이지를 구입하고 브레이크패드를 갈고 이미 장착된 산악용 1.95인치 두께의 타이어에서 도로에서 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1.75인치 두께의 타이어로(속의 튜브를 교체하지 않고 쓸 수 있는 가장 좁은 타이어. 좁을 수록 포장도로에서 빠르다)도 교체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다섯째 날 점심나절 모든 장비를 갖춘 자전거를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챙겨 나왔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영어를 못해 자전거 가게에서 구글 번역기로 자전거 가게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들 축제 마지막 날을 위해서인지 단지 날 위해서인지 그날 밀라노의 햇살은 얼마나 따스하던지 그저 기분이 좋았다.
입고 있던 후드자켓은 자전거 패니어에 기분 좋게 넣어 놓고 즐거워 보이는 분장한 사람들 사이로 나 역시 웃으며 유유히 자전거를 몰며 카이롤리 카스텔로(Cairoli Castello) 메트로 역 앞에 있는 스포츠용품점 데카틀론으로 향했다. 데카틀론에 도착한 때는 오후 6시쯤, 그 앞에 커다란 공원이 있고 그 반대편 가까이에 밀라노의 중심거리가 있는데다가 이날이 축제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그 주변엔 축제를 즐기러 나온 가족단위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전거를 맡겨 놓은 동안 관광객으로서
데카틀론 입구 바로 앞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워 자물쇠로 잠그고 들어가 약 한 시간가량 스펀지 매트리스, 랜턴, 등산양말, 작은 온도계와 나침반이 함께 달린 비상용 호루라기 등을 구입하였다. 이제 우리 호스트 친구들과 음주가무 할 차례다. 게다가 내일이면 드디어 출발한다. 들뜬 마음으로 가게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저녁이어서 사람은 많았고 밖은 어두웠다. 어둡고 앞에 사람들이 많아 자전거가 잘 안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는데 여전히 잘 안보이네? 없나? 없나? 설마 없나? 정말 없나? 자전거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도둑맞은 자전거 세워놨던 자리 덴마크 유로저널 김동령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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