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령의 자전거 모험(3) ? 4. 야영도 자전거 정비도 직접 해본 적 없는 생초보자
간밤에 사람 두 명이 개 한 마리 데리고 텐트 옆을 지나갔지만 별일 없었다. 다만 개가 지나가면서 크게 짖어대어 혹여나 개 주인이 개 끈을 놓치지 걱정했다. 만약 자고 있는데 정말 짐승이 달려들면 어떡하지? 어젯밤 개가 지나가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텐트 밖에 있던 신발을 텐트 안으로 들여 놓았고 맥가이버 칼을 파카 주머니 안에 넣고 잤다. 첫 야영 후 모험 13일의 첫 아침은 그리 상쾌하지 않다. 지난 12일간 밀라노는 너무나도 맑아 햇볕은 따사롭게 내리쬈고 지난 2월 초의 유럽 강추위는 온데간데없다. 그런데 본격적인 여행 시작과 동시에 일기예보는 좋지 않다. 아침에 약간의 비가 내렸고 날은 흐리다. 일어나서 보니 자전거 앞 페니어 왼쪽 가방 아랫부분이 터져있다.
터진 앞 페니어 오른쪽 가방을 철사로 꿰메었다. 아직 자전거 제대로 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방이 터지면 어쩌란 말인가. 아마도 앞 짐받이가 문제다. 자전거 여행용이 아닌 짐받이 옆에 페니어 가방이 바퀴에 닫지 않도록 U자 모양의 주물을 하나 덧댄 것이었다. 비용은 총 20유로밖에 들지 않았고 보통의 자전거 여행용 짐받이 가격이 70유로에서 120유로 정도 임을 감안하면 저렴해서 좋긴 한데 이 U자 모양의 주물이 페니어 가방을 제대로 막지 못해 자전거 후진 시 페니어 가방에 앞바퀴살이 걸리면서 뜯어진 모양이다. 단순한 모양의 둥근 가방이라면 바퀴살이 스쳐 지나갈 텐데 이 건 안쪽 편의 단단한 플라스틱 널빤지에 피륙이 박음질 되어있는 것이라 이 플라스틱 널빤지가 바퀴살 넘어로 들어가 걸리게 되면 제대로 걸리는 거다. 사실 앞 짐받이든 앞 페니어든 둘 중 하나만 좋은 제품이었으면 이런 문제는 없을 텐데, 저렴하게 여행을 해야 하니 이런 일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일요일이기도 하고 환불 또는 교환하러 하루 더 써가면서 이 지긋지긋한 밀라노를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다. 다행이 전날 공사 현장에서 필요할까 싶어 인부에게 부탁해 받은 철사가 있어 단단한 플라스틱 널빤지에 꿰매는 거라 쉽진않지만 냉큼 꿰매 버렸다. 앞으로 조심히만 다룬다면 당분간 문제는 없을 것 같고 문제가 되면 그때 가서 새 제품을 구입하면 될 것 같다. 다만 뒤 페니어는 방수이지만 저예산 때문에 구입한 방수가 아닌 앞 페니어 때문에 걱정이 된다. 비 오면 그때 가서 어떻게든 해결 할 것이다. 자, 비도 그쳤고, 페니어도 수리했고, 텐트도 다 개어 모든 짐을 다시 꾸렸다. 때는 일요일 두 시 정도였고 전날 이리노 목사님께 인사 드리고 나와 몇 시간을 헤맸지만 고작 그 근처였다. 전날 교회에서 이 목사님만 뵙고 한영진 집사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전화를 건다. 또 한발 늦었다. 한 집사님은 이미 댁에 들어가는 중이다. 대신 아직 교회에 아내가 있고 음식이 있으니 가서 자기 아내 찾아 밥 먹고 출발하라고 하셔 한 집사님 대신 아주머니께라도 인사 드리겠다고 다시 교회로 향한다. 가는데 5분밖에 안 걸렸다. 어젯밤 몇 시간을 헤매서 왔는데 단순간에 되돌아오다니, 앞으로 텐트 칠 장소 찾는데 고생길이 훤하다. 도착하니 한 집사님네 아주머니께서 환영해주시고 이미 점심 시간이 끝나는 때지만 간단하게 미역국과 김치로 한 상을 차려 주신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모국의 맛이다. 교회는 자기 부지와 담을 갖고 있고 그 담 안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자전거를 건물 벽에 세워놓고 바로 문 안에 들어가 식사를 한다는 게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동령아 너 참 소심해졌구나. 그런데 이 뜨거운 미역국 한 술 떠 입 안에 넘기니 시야가 맑아지고 정신이 깨는 듯 한 느낌이다. 당연히 밖에 교회 분들이 계시는데 자전거의 안전은 틀림없는 것 아닌 가. 이에 밥 세 공기는 후딱 해치워 버렸다. 음식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국을 떠나온 이래 1.5년간의 먹었던 음식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음식은 기효순 아주머니께서 해주신 음식이다. 그 이유는 달지 않고 조미료가 전혀 안 들어간 우리 순수한 고향의 맛이었다. 부모님께서 시골스러운 음식을 좋아하셔서 부모님 댁에는 조미료가 전혀 없다. 요즘 슈퍼에서 보이는 무화학물 천연 조미료라고 선전하는 그런 제품조차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나와 살았던 나는 지난 어느 날을 기억한다.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왔고 저녁 반찬에 우리집 뒷마당 땅 속 장독에서 잘 숙성된 배추김치와 무김치가 올라와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날 때까지 다른 반찬은 전혀 먹을 수 조차 없었다. 김치는 반찬이라고 여겨왔던 난 그때 깨달았다. 김치도 요리다. 그 순수한 김치의 맛을 회상하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눈가에 눈물이 고일 정도인데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이 맛을 알까. 현재 우리나라 많은 가정이 조미료 맛에 익숙해졌고, 식당 음식은 당연히 조미료가 들어간다. 심지어 몇 해 전부터는 식당 음식이 점점 달아지기 시작했다. 싸고 대충 빨리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잠깐 맞추기 위한 것 같은데, 이건 대한민국 음식 역사의 위기의 순간이다. 잠깐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위대한 우리 음식에 대해 걱정을 해 보았다. 배도 든든해졌고 한 집사님네 아주머니께도 인사도 드렸다. 주변에 계시던 분들의 따뜻한 성원을 받으며 이제 제대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밀라노, 진짜 안녕이다. 좋은 분들이 많아 넌 그나마 내 기억 속에 나쁘지만은 않게 남아 있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밀라노 남쪽 아래 바닷가에 위치한 제노바에서 동쪽으로 가면 친퀘테레(Cinque Terre)에 가기 위해서이고 멀리는 로마도 갈 것이다. 뚜렷한 일정 없이 출발지와 도착지만 정해놓고 여행 하는 건 9년 전 국내 무전 여행과 다를 게 없다. 밀라노에 와서도 남쪽으로 내려갈 생각은 별로 없었다. 동쪽의 베로나와 베네치아를 지나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을 거쳐 덴마크로 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밀라노에 와서 이탈리아에 왔으니 유럽의 여러 문화 문명에 큰 기여를 한 로마는 꼭 가보야 한다는 권고에 덴마크는 북쪽인데도 불구하고 남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는 길 바로 옆에 있는 다섯 개의 아름다운 해안절벽 마을 친퀘테레라는 곳이 있다 하니 친퀘테레를 첫 목적지로 정했다. 지도상 거리는 대략 230km. 며칠이나 걸릴까, 한 번 달려 보자. 이런 거창해 보이는 여행은 보통 여행 전문가나 최소 연습을 해보고 떠난 다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모든지 잘해 나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한 난 여행 전문가도 아니요, 야영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자전거 전문가도 아니요, 심지어 자전거를 오래 타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 무전여행 당시 자전거로 일주일간 한라산을 넘어 반달 모양으로 제주도 일주를 한 적은 있다(돈 없이 제주도는 어떻게 가고 자전거는 어디서 났을까?). 이 여행을 위하여 덴마크에 오기 전에 서울의 한 자전거 가게에서 미리 자전거를 구입할 때의 일이다. ”유럽에 가져가서 자전거로 유럽 한 바퀴 돌아 보려고요.” ”에이, 자전거 제대로 타본 적도 없는 분이 힘들 텐데.” ”교환학생 한 학기 동안 연습 좀 해봐야죠.” 덴마크에 있는 동안 몇 번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었지만 모두 어찌하여, 어쩌면 게을러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지금 가지고 가는 이 텐트도 덴마크에서 만난 프랑스 교환학생 친구 악튀(Arthur)와 함께 자전거로 여행하자며 같이 부담하여 구입한 것이지만 악튀만 몇 번 이 텐트를 사용하고 난 어제 처음 쓴 거다. 즉 야영도 어젯밤이 처음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오래 달릴 차례다. 과연 제대로 성공할 수 있을까? 예전에 군대에서 한자자격증2급 시험 준비할 때 뒤늦게 준비하는 바람에 시험날까지 짧은 기간 안에 다 공부할 자신이 없고 떨어질 가능성이 커서 처음엔 사람들에게 한자2급 준비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피자가게에서 일하는 마르코 말해놓고 떨어지면 창피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하고 덴마크로 돌아오겠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고 다녔다. 그런데 이건 지역구도 전국구 동네방네도 아니라 세계구 동네방네다. 남아일언중천금이다 동령아, 중도하차하면 얼굴 못 드는 거야. 아자! 한번 가 보자! 모험 13일 오늘, 흐린 하늘 아래 63km를 힘껏 달리다 보니 산죠르죠디로멜리나(San Giorgio di Lomellina)까지 왔다. 밀라노 일대 이곳은 논밭만 있는 광활한 평지다. 일기예보상 비가 올 수도 있고 이런 평야에서 남의 시선 피해 텐트 칠 장소를 찾기도 쉽지가 않다. 저녁으로 피자 하나 사먹고 좋은 잠자리를 물어보기 위해 피자가게에 들어갔다. 논밭만 있다가 잠깐 나타난 아주 작은, 호텔은 당연히 없고 이탈리아에 그 흔하고 흔한 피자가게조차 한두 개밖에 없을 것 같은 이 작은 동네의 피지가게 앞에 자전거 주차하는데 자물쇠로 묶고 또 묶으면서 유별을 떠는 내 모습에 주인과 종업원은 기가 찼을 것이다. 피자를 먹고 있는데 종업원 마르코(Marco)가 이 피자를 대접한다고 즉 대신 지불한다고 주인집 아줌마가 일러준다. 먼저 호의를 보인 첫 현지인이다! 이 감격은 금세 보답의 의무감으로 맥주를 사려 했지만 기어코 나의 선의는 받아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 집에서 재워주고 싶지만 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다소 곤란하다며 주인집 아저씨한테 말해서 피자가게 뒤 장작 헛간 지붕아래 텐트를 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행이 오늘은 쉽게 잠자리를 찾았다(좌표 45.172086, 8.790717). ?
길은 좌우로 갈라지는데 가야할 마젠타(Magenta)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이런 식으로 이탈리아 표지판은 가끔 불명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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