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는 왜 장 모네(Jean Monnet)가 없을까?

by eknews16 posted May 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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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는 왜 장 모네(Jean Monnet)가 없을까?

5월 9일은 유럽의 날, 유로존 위기 속에서 모네같은 비전의 인물 필요

 

“사람 없이는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고 제도 없이는 아무 것도 지속될 수 없다.” (유럽통합의 아버지 장 모네)

 

5월 9일은 유럽의 날(Europe Day)이다. 1950년 당시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베르 슈망(Robert Schuman)은 이 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골자는 석탄과 철강이라는 전략 물자를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 관리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슈망선언이라고 알려진 이 기자회견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세기에 걸친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려면 전략 물자인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관리하여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망 장관은 참여를 희망하는 다른 회원국들도 이 계획에 참여할 수 있다고 문호를 열어 놓았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이 참여해 협상을 벌여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ECSC)를 창설하는 파리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1952년 비준이 완료되어 이듬해부터 ECSC의 행정부라 할 수 있는 고위기구(High Authority)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슈망선언을 작성하고 통합의 물꼬를 튼 인물이 장 모네다. 모네는 ‘유럽통합의 아버지’라 불린다.

 

비전의 인물이지만 정치가도 관료도 아니었던 자유인 모네

모네는 다양한 경력의 인물이지만 직업으로 보면 정치가나 관료도 아니었다. 그는 1888년 코냑(Cognac)으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의 코냑 지방 출신으로 코냑 장사도 했고 국제연맹의 고위 관료를 역임한 후, 1차 대전 그리고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군수물자 확보를 위해 미국에 오랫동안 체류했다.

2차 대전이 종결된 후 파리로 돌아온 그는 1946년부터 프랑스 현대화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총리 직속의 이 기구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프랑스 경제를 현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각 부처, 사용자 단체, 노조 등이 참여해 제출한 분야별 현대화 계획을 종합 평가하여 우선 순위를 매겨 실천했다.

모네의 회고록을 보면 그의 상황분석이 매우 냉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프랑스 경제가 2차대전으로 쇠락이 가속화했지만 이미 1920년대부터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고 객관적으로 진단했다. 그는 기업가 정신의 부족을 자국 경제의 쇠락 원인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모네의 이런 현대화 계획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철강이나 석탄 생산량도 1929년 대공황 이전의 수준을 넘지 못했고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여기에서 모네의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발휘된다.

그는 자국 경제를 현대화하고 독일의 호전적인 민족주의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통합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당시는 석유가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료로서 석탄,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철강이 핵심적인 전략물자였다. 독일의 루르지방에 이런 전략 물자가 풍부했고 프랑스는 경제발전을 위해서 이런 물자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요했다. 물론 미국은 1948년부터 일년 간 지속된 베를린 봉쇄 이후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패전국 독일의 경제를 부흥시키고 결국에는 재무장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이런 정책에 동참을 요구했다. 승전국 영국은 대륙의 자국보다 못한 나라들에 관심이 없었고 프랑스는 독일의 경제부흥과 재무장에 처음에는 ‘학을 떼었다.’ 1871년의 보불전쟁(프러시아와 프랑스), 1, 2차 대전에서 독일로부터 겪은 수모를 기억하며 강경한 대독일 정책을 주문하는 국내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모네의 위대한 점은 바로 석탄과 철강의 공동관리라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적절한 시기에 제시하고 이를 관철시켰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 주요 정책결정자들과의 밀접한 관계, 슈망 외무장관과의 관계 등을 십분 활용하여 유럽통합의 물꼬를 튼 비전을 실천했다.

모네는 물론 유럽통합의 종착역으로 연방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단번에 여기에 도달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석탄과 철강이라는 전략 산업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다 보면 다른 경제 분야도 회원국끼리 점차 협력을 강화할 수 밖에 없음을 인식했다.

 

아시아의 상황

지난해 말 미국이 아시아로의 귀환을 선언했다. 중국의 급속한 부상에 두려움을 느낀 일본이나 싱가폴 등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에 이 지역에 적극 관여할 것을 요청했다. 미국도 중국의 부상을 적절하게 견제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지역에 좀 더 관심을 둬야 한다고 여겼다.

인구 13억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첫 머리에 인용한 문장처럼 기구를 창설하는 것이다. 중국이 관심을 가질만한 기구를 창설하거나 혹은 기존의 기구를 개혁하여 중국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 기구 안에서 중국을 적절하게 견제하는 것이다. 정책 분야에 따라서 중국의 견제를 희망하는 국가들이 비공식적인 협력을 통하여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다.

유럽의 날인 9일에 아시아에도 장 모네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아시아 주요 국가 간에 치열한 상호경쟁이 가속화하면서 이런 바람은 더 절실하다.

안 병 억 jeanmonnet201988-original1-k0ol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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