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이나 인품, 기술이나 실력이 범상한 수준을 넘어서 높은 수준에 이른 것을 말합니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깊은 상념에 빠진 모습은 만든 사람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줍니다. 다소곳이 숙인 고개, 감은 듯 내리뜬 눈, 살며시 볼을 고이고 있는 듯 아닌 듯한 섬세한 오른손, 물 흐르듯 어깨 죽지 밑을 흘러내린 허리, 인간만사를 떠나 시공을 넘어 일체가 끊어진 경지 ... 제작한 사람의 경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경지만큼 보입니다. 제작한 사람이 미처 이르지 못한 더 깊고 높은 경지를 볼 수도 있습니다.
석굴암의 부처도 우람한 체구에 전체적으로 범접하기 쉽지 않은 표정 - 근엄하기도 하고 한없이 온화하기도 합니다. 감은 듯 내리 뜬 눈은 이루 가늠할 수 없는 깊고 높은 경지에 세상 만물의 근본을 꿰뚫고 있는 듯하고 넓은 가슴은 숨을 쉬는 듯 마는 듯 천지 만물만상을 다 품은 듯합니다.
모나리자(라지오콘다)는 서양 사람에게는 신비로운 동양적 미소로 다가옵니다. 수줍은 듯 조용히 미소를 머금은 입술과 약간 비껴 바라보는 눈매와 다소곳한 모습은 정결한 여인에게 줄 수 있는 온갖 찬사를 떠오르게 합니다.
대만의 고웅(高宮) 박물관에 가면 98개의 옥사슬 고리가 있는데 중국인만이 만들 수 있다고 자랑을 하는 말을 듣고 우리나라의 옥공예가가 256개의 옥사슬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쇠사슬은 고리를 하나하나 만들어서 연결하면 되지만 옥사슬은 옥 덩이를 끌과 징으로 쪼고 다듬어서 전체 고리를 조각하여야 합니다. 고도의 기술과 인내는 중국인만이 할 수 있다고 하고 그것을 능가하는 작품이 세계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옥공예가가 그것보다 두 배 반을 넘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중국인의 경지를 한참 넘는 경지입니다.
경지는 아는 것이 아니고 된 것입니다. 되었기 때문에 그 경지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드러납니다. 그러한 경지를 보고 아는 것도 작가의 경지만큼 되어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경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의미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경지가 되었을 때 알 수 있습니다. 생사일여(生死一如)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전의 진리와 관련이 있는 말의 뜻은 그 경지가 되어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누구도 진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경전이 어렵고 아무리 알려고 애를 써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연구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지에 이르면 그냥 알아집니다. 그렇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때가 끼인 유리창으로 바깥세상을 보는 사람은 바깥세상이 흐릿한 줄 알고 있는데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이 바깥세상은 밝은 세상이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바깥세상을 아무리 연구해도 모릅니다. 바깥세상사람이 왜 그런가 하고 살펴보니 유리창에 때가 끼어 그렇다는 것을 알고 때를 닦아보라고 합니다. 유리창의 때를 닦아보니 닦은 만큼 바깥세상이 드러나서 바깥세상을 그냥 알게 됩니다. 유리창을 다 닦고 유리창마저 깨 버리니 안팎이 터져서 유리창 밖과 안이 하나가 됩니다. 흐릿한 세상의 관념을 가진 존재마저 다 버리고 나니 유리창 안에 사는 사람은 소멸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유리창 바깥세상사람으로 거듭난 존재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