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몰상식
국민 10%, 즉 수백만 명의 지지를 받던 한 정당이 풍비박산이 나고 있다.
애시당초 세 개의 세력이 연합했던 것이 이제는 둘로 쪼개지게 생겼다.
거기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인 검찰 압수수색 마저 당했다. 검찰은 지난 21일 통합진보당의 경선부정에 대해 본격수사에 착수, 서울대방동 당사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컴퓨터 서버와 모든 당원명부등을 압수에 앞서 “부정경선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것”이라고 밝혔다.
진보당의 신당권파인 혁신비대위 강기갑 위원장은 이에 대해 “정당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 구당권파인 당원비대위측은 “통합진보당을 말살하려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진보당측은 자신들을 제외한 어느 정당이나 정파, 시민단체들도 이같은 검찰조치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국민중 누가 부정선거를 눈감아 주겠는가.
심지어 그들의 후원세력인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의 백낙청 서울대명예교수등 원로그룹인사들마저도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당내선거는 당 내부의 일이기 때문에 검찰이 손댈수 없다는 것이 진보당측의 유일한 수사반발 논리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시민단체의 고발이 있는데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당락을 결정하는 경선에서 원초적인 부정을 저질렀고 이를 둘러싸고 당내 폭력사태를 부른 것은 스스로가 검찰수사를 자초한 것으로 봐야 한다.
진보당의 비례대표후보 경선부정 의혹은 당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결과 온라인 투표의 중복과 오류, 당원명부상의 투표인수보다 투표자수가 더많은 사실이 확인됐고 그 증거까지 확보된 상태다.
문제는 진보당의 이석기 당선자를 비롯한 구당권파가 모든 정파 정당 단체 국민들이 경선부정을 규탄하며
사퇴를 요구하는데도 굳이 버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다.
당권파가 관련된 정당 사상 초유의 불법선거는 상식에 대한 몰상식의 폭거다.
1904년 토마스 페인의 저서 'Common Sense'가 일본에서 '상식'으로 번역돼 한국에 들어온 이래 상식이 이처럼 위협 받기는 처음이다. 당권파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사퇴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그런데 비판과 사퇴요구가 빗발쳐도 그들은 부정을 '실수'라고 항변하면서 사퇴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일반에 노출되지 않은 그들만의 논리 때문이다.
첫째, 국민 보다 당원을 우위에 두는 전도된 선민의식과 열등감으로 점철된 엘리트주의다.
어떤 정치체제 세력에게도 불변의 가치인 국민은 당원 위의 상위개념이다. 당이 존재하고 권력을 잡으려는 것도 국민을 위해서다. 공산당이 국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국민은 존재한다.
그런데도 당권파는 국민이 아니라 당원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겐 자신들만이 민족, 민주운동을 고생하면서 해왔으니 당연히 이에 대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있다.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으려면 아예 자신들이 받은 국고보조금과 국회의원 세비를 내놓고 당비로 정치를 해야 한다.
둘째, 목적을 위해선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목적지상주의다.
이는 신성한 민족통일과업을 수행하는데 '사소한' 부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자기합리화와 짝을 이룬다.
이런 '논리'로 무장하고 있기에 보편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몰상식, 이중잣대, 떼쓰기, 책임전가, 꼼수 등의 백태들이 속출하는 것이다. 목적은 당내 주도권 유지와 당권파의 국회진입이다.
이정희 전 공동대표는 자신들을 비판하면 "통합진보당 내부로부터의 몰락, 야권연대와 진보집권 가능성의 소멸"될 것이라며 공갈쳤다.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창출을 원하는 진보진영의 열망을 악용해 문제를 덮어 주도권 유지는 물론 자파 국회의원 당선자를 의회에 진출시키려는 얄팍하고 유치한 술수다.
이석기 당선자도 "100% 완벽한 선거는 없다"고 강변하면서 "의도적으로 속인 게 아니니까" 끝까지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겠다고 했다. 범죄지만 의도적이 아니라면 면죄해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다.
그들의 이념적 사부 마르크스가 언급한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요구하는 목적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경고와도 모순된다.
셋째, 당권파도 투표과정엔 유권자의 자유의지 외에 어떤 요소도 개입돼선 안 된다는 게 상식이고, 부정은 있었지만 조사과정이 부실했기 때문에 부정이 아니라는 주장이 억지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인정하면 이른바 '이석기 키즈'인 2~30대 좌편향 청년당원들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광신적인 종교집단의 교주 받들듯 당권파를 위호하는 키즈들은 충성경쟁에서 선명하게 각인돼 미래엔 자신도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거다.
이정희와 김석기 같은 인물로는 진보정당이 되기 어렵다.
이정희는 "상식에 근거하여 바로잡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그들의 '상식'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차돌을 품고 있는 암탉에게 부화를 바라는 거나 다름없다.
국회의원 당선자 제명법이 제정돼 이에 의거해 사퇴시켜야 하고, 부정과 폭력행위에 대해선 사법처리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마지막엔 국민이 표로 심판할 수밖에 없다. <관련기사: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