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讎)였던 오(吳)나라의 왕 합려(闔閭)와 월(越)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전쟁을 벌여 오나라의 왕 합려가 부상을 입어 죽으면서 아들 부차(夫差)에게 원수를 잊지 말도록 당부하였습니다. 왕위에 오른 부차는 가시나무를 깔아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자고(와신;臥薪) 부하들이 자기 방을 드나들 때마다 아버지의 유언을 외치게 함으로써 마음의 고삐를 항상 바짝 죄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월나라 왕 합려는 오나라를 선제공격하였으나 전쟁에 패하여 항복을 하고 풀려났습니다. 오나라의 속령이 된 고국에 돌아온 합려는 곁에 쓸개를 두고 그 쓴 맛을 핥으며(상담;嘗膽)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어느 정도 군사를 길러 힘이 생기자 합려는 오나라를 정복하고 오나라의 멸망으로 끝납니다.
공산혁명을 이끈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나치 주의자 히틀러, 크메르루즈의 폴폿 등은 자기들이 받드는 이념을 위해 인륜을 벗어나는 악행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그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젖 짜는 소녀가 우유가 가득 담긴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내다 팔려고 길을 가면서 생각합니다. ‘우유를 팔아서 병아리를 사고 병아리를 길러 팔아서 염소를 사고 염소를 팔아서 송아지를 사고 ...’ 하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항아리에 담긴 우유를 다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일본 왕실에서는 선조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는데 공개적으로 지내는 공식적인 제사 외에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왕실 내에서 별도로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이 제사는 한국의 전통제사와 같다고 합니다. 왕실의 뿌리가 일본에 내린 지 천년이 더 지났어도 그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이민 간 사람들은 고국의 말과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면서 그 나라의 풍물을 고국에서 형성된 관념으로 바라봅니다. ‘우리나라는 저렇지 않은데 ...’
인공위성을 타고 고도의 문명세계에 가서 상상할 수도 없는 풍요로움을 누리며 잘 살면서도 지구에서 살 때 마음에 담아놓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사연과 인연, 풍광(삶의 장소)을 떠올리며 그리워합니다. 망념(妄念)에 빠져있습니다.
천동설을 신봉하고 있으면 천동설이 옳지 않은데도 과학적으로 옳다고 입증된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항상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으로 삽니다. 그 생각에 빠져 있고 묶여있습니다. 지식과 이념, 상념(想念), 삶의 기억된 생각에 구속되어있습니다. 마음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인으로 주인이 되어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제각각 다른 마음에 매여 있어 서로 대립과 갈등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삶의 주인이 되어 자유인으로 살고 근본이 하나인 마음으로 살려면 나를 묶고 있는 관념을 다 벗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