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령의 자전거 모험

7. 드디어 첫 목적지 친퀘테레

by eknews posted Jul 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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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드디어 첫 목적지 친퀘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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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노을과 함께 친퀘테레에 도착했다. 도로 표지판 옆에 금성과 목성이 보인다.

레반토에서 하룻밤 더 머물며 목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길 기다릴까 고민하다가 친퀘테레(Cinque Terre)의 첫 번째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가 1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단순히 휴식을 취할 거면 친퀘테레에 가서 쉬자며 어떻게든 아픈 목을 이끌고 가기로 맘 먹었다. 

세스트리 레반테까지는 주요도로로 달려왔고 레반토까지는 주요도로에서 다소 떨어져 나오는 도로로 달려왔지만 친퀘테레는 이제 도로번호조차 없는 그런 산길 도로로 가야 한다. 그걸 방심한 걸까. 길은 거칠고 구불구불한 정도는 최고였다. 오르막길은 가파르기에 오르기 힘들고 내리막길은 위험하기에 힘들게 올라온 길에 대한 보상받을 길 없이 속도를 줄이며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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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치지 말라는데 기어코 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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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홍수와 산사태 때문에 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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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일부는 상당히 파괴되어 여전히 복구공사 중이다.

해가 지고 저녁 8시가 되어갈 때쯤 몬테로소 알 마레에 드디어 도착했다. 감격의 순간이다. 벅참 감동은 소리라도 마구 지르고 싶은 욕구로 변하여 날 가득 채웠다. 서해바다의 대천해수욕장처럼 넓었더라면 파도 근처까지 달려가 환호성을 지르며 미친 척 춤을 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좁은 해변에 작은 동네라 내가 소리치면 동네 주민들 불 났나 곳곳의 창문이 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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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로소 알 마레에 도착 후

대신에 사진 몇 방 찍고 잠시 노래를 들으면 바닷바람을 쐤다. 간혹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 한적한 마을을 첫 목적지로 삼고 밀로노서부터 약 350 km를 달려왔다.

지난 200 km동안은 계속 산과 언덕길이었기 때문에 무릎이 많은 고생을 했고 지난 며칠간 약 백여 km동안은 왼쪽 무릎도 종종 아팠다. 자고 일어나면 무릎이 회복됐다가도 텐트 칠 무렵이면 다시 아파지는 것이 요즘의 일상 패턴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목도 상당히 안 좋다. 과연 자전거 여행을 완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로멜로와 세스트리 레반테에서 사람들을 조금 사귄 것 말고는 아직 제대로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었다.

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삶을 배우며 미래에 내가 보다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자신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다. 나는 젊다. 여전히 많은 것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유연한 젊은 나이다. 

분명 덴마크에서 1.5년간 살면서 수많은 것을 배웠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봤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피부로 느꼈다. 사람은 끊임없이 배운다고 한다. 이것은 비단 지식 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명 그 새로운 것, 예상치 못한 걸 깨닫는 것을 포함한다. 선입관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 결국 선입관으로 밝혀지고, 고정관념을 이미 깼다고 싶었는데 여전히 고정관념 안에 앉아 있었다. 우물 안에서 벗어 나왔다고 여겼는데 여전히 더 넓은 우물의 울타리 안에서 놀던 것이다. 

아쉽게도 아직 모든 우물을 뛰어 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 우물의 또 다른 울타리가 어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또 찾을 것이고 계속 뛰어 넘을 것이다. 그 숨겨진 우물의 울타리를 찾을 수 있도록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관찰하든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대화해야 하는데, 여태 난 땀 흘리며 자전거 타고 텐트 칠 곳 찾아 돌아다닌 것 밖에 없다. 

물론 이 자전거 여행도 정말 재미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일 텐트 칠 곳을 찾으며 자전거 타고 미지를 여행할까. 이 모험 자체가 신나고, 지금 이때 아니면 다시 하기 힘든 여행이다. 이것만으로도 즐겁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자전거 여행 배태랑 문종성씨의 말에 의하면 터키와 미국에서 자전거 타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현지인들에게 초대를 받는다는데, 지난 십일 일간 먼저 초대받아 본 적은 한 번도 없고 게다가 이탈리아 사람들은 영어도 못해 의사소통이 불편하다. 거지조차 영어를 꽤나 구사하는 덴마크와는 달라도 매우 다르다. (내가 영어라는 언어 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위치 선정이 잘못된 것인가? 이것도 경험이다. 분명 방법은 있을 것이고 터키나 미국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여기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 카우치서핑(현지인 집의 소파에서 숙박비 없이 지내며 같이 음식을 해먹거나 이야기 하는 등의 교류를 하는 일. 현지인을 호스트라고 하고 방문하는 여행객을 카우치서퍼라고 한다.)이다. 서서히 카우치서핑의 이용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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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퀘테레에서의 첫 저녁식사. 짝퉁 리조토 언제나 맛있다.

어쨌거나 드디어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참을 명상에 잠겼던 것 같다. 다시 움직여 보자. 이 작은 동네를 몇 번 둘러본 후 텐트 칠 곳을 찾았다. 

몬테로소 알 마레는 바다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에 신동네와 오른쪽에 구동네가 가운데 언덕을 하나로 나뉘는데 그 언덕의 바닷가 쪽 끝자락(좌표 44.144759,9.654456)에 텐트를 숨겨 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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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몬테로소 알 마레의 신동네, 오른쪽이 구동네이다. 가운데 텐트가 작게 보인다.

다음날 날씨가 화창하고 바다가 맑다. 투명한 바다를 보니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지만 아직 물이 차고 게다가 차후 샤워하는 것도 문제다. 3월 중순이다 보니 아직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다. 수학여행 온 듯한 학생들이 그나마 꽤 있었고 한 단체는 캐나다의 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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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근처 바닷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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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근처 바닷물

따스한 봄날의 햇볕을 즐기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한 사내가 오더니 말을 건다. 설치된 텐트와 자전거를 보고 신기한가 보다. 그는 아직 관광 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단속을 제대로 안 해서 괜찮지만 관광 시즌이면 여기다가도 텐트를 몰래 못 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구동네에 자기가 운영하는 바(Bar, 술집 겸 카페)가 있고 와이파이가 있으니 언제든지 와서 와이파이를 즐기라고 초대했다. 그의 이름은 시모네(Simo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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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네가 챙겨준 생수와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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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퀘테레 특산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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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네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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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네 가게 밖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갑자기 내 자전거 앞 가방 위로 올라와 잠을 자려고 한다.

같이 사진을 찍은 후 기어이 잠에 든다.

여전히 목은 상당히 아프기 때문에 텐트에서 한참을 쉬다가 동네를 천천히 돌아봤다. 오후 나절이 되어 시모네의 가게 라 칸티나 델 페스카토레(La Cantina del Pescatore)를 찾아갔다. 여자친구인 베로니카(Veronica)와 함께 운영하며 술, 커피 등 음료뿐만 아니라 친퀘테레 특산 와인, 향신료, 과일 등도 함께 팔았다. 

즐겁게 인사 후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허락을 받은 후 건전지 충전기를 콘센트에 꼽고 넷북을 켰다. 그러는 사이 시모네는 물 한 병과 빵 몇 조각을 여자친구 몰래 가져다 줬다. 시모네와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항상 여행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음료 및 상품 구입에 상관없이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친절한 걸까 아니면 장사할 줄 아는 걸까. 시모네의 친절에 감격해 곧장 3유로짜리 친퀘테레 특산 와인 한 잔 시켰다. 화이트 와인으로 탄산이 좀 있고 맛이 달지 않고 독특했다. 이 맛에 익숙해지면 맛있게 마실 듯 하지만 아직은 친숙한 맛은 아니다. 

근처에서 태어나 자란 시모네는 친퀘테레의 올리브, 와인포도 그리고 와인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친퀘테레에 도착하기 전부터 친퀘테레 와인 광고 또는 소개를 우연찮게 많이 접해서인지 친퀘테레 와인은 무언가 좋다는 무의식적 개념이 생겼던 것 같은데 막상 마셔보니 비전문가로서 그 가치를 인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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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의 신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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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마을인 베르나짜(Vernaz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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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마을인 코르닐리아(Cornig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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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섯 번째 마을인 마나롤라(Manarola)와 리오마죠레(Riomaggiore)

몬테로소 알 마레에서 하룻밤을 더 머물며 나른한 휴식과 함께 한가로운 관광을 마치고 이제 친퀘테레의 옆 마을로 이동하려고 한다. 

해안가의 연속한 다섯 동네이기 때문에 옆 동네로 가기 위해선 해안가 근처의 산책로 길로 가거나 들어왔던 번호 없는 도로로 다시 나갔다가 다시 두 번째 동네로 들어가는 “왔다갔다”를 반복해야 하는데, 작년 말 홍수와 산사태로 거의 모든 산책로가 닫혔고 심지어 그 번호 없는 도로들도 일부 막혀 지나갈 수 없고 위험하다고 여행 안내소에서 말해줬다. 그래서 처음으로 기차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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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로소 알 마레의 한가한 점심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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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부리면서 그동안 필요했던 자전거 정비도 마쳤다.

기차 시간 10분 전에 창구로 갔는데 직원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5분을 기다리니 직원이 어디선가 돌아와 아직 기차 도착 안 했다며 표를 팔기 시작한다. 

표를 구입해 보니 승차 플랫폼은 기찻길 건너라 지하도로 건너가야 한다. 그런데 장애인용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전혀 없다. 휠체어나 유모차는 기차 타지 말라는 것인가. 밀라노에서도 인도 턱에 경사로 없는 경우를 수없이 봤다. 사실 밀라노에서 실망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탈리아를 떠날 때쯤 다시 회상해 보자. 좌우간 역시나 답답한 이탈리아 대책이 없는 나라다. 결국 기차를 눈 앞에서 그저 놓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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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베르나짜. 다섯 마을 중 지난 홍수와 산사태의 피해가 가장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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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위에 집이 있다. 산사태 전에는 분명 신비롭고 대단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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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닐리아는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서인지 비 피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작은 마을의 집들이 서로 엉켜있다.

두 번째, 세 번째 마을인 베르나짜와 코르닐리아를 기차로 차례로 들려 구경 후 밤이 되어 네 번째 마을 마나롤라에 도착하였다. 역시 이들 역 모두가 장애인 편의시설이 전혀 없었다. 두, 세 번째 마을의 경우 자전거를 플랫폼에 세워두고 마을을 구경하고 오면 되었지만 네 번째 마을의 경우 야영을 위해 자전거를 들고 기차역 밖으로 나가야 한다. 첫 번째 마을은 그래도 기차역 내외가 지상으로 연결되어 기차가 안 올 때 기찻길 위로 건너갈 수 있었지만 네 번째 마을은 이마저도 안 된다. 결국 20여 분 동안 씨름하여 자전거와 함께 지하도를 건너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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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동네 마나롤라 기차역의 지하도. 모든 짐을 실은 자전거와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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