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친퀘테레의 고요한 바다와 그라빠, 그리고 황당무계한 모욕
이 절벽 위 평지로 가는 정상적인 길은 없기 때문에 이 근사한 곳에서 하룻밤 자기 위해 자전거를 멀리 세워놓고 몇 번에 거쳐 짐을 옮겨왔다. 멀리서 비쳐주는 약한 가로등 불 빛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랴 조심스레 텐트를 쳤고 날은 그믐에 가까웠기 때문에 달빛 없이 별빛을 즐기며 역시 또 밥 지어 먹었다. 바로 이 맛이 캠핑 여행의 맛이다.
수건도 제대로 없고 샤워할 곳도 없는데, 큰 결정이었다.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두 사내가 물가 근처 작은 보트 위에서 무언가 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가 이 곳에서 수영해도 되냐고 물어보며 대화를 시도 했다. 이곳에 사는 크리스티안과 안드레아는 영어를 거의 못했다. 단어 하나하나 간신히 주고 받으며 대화 아닌 대화를 힘들게 이어나갔다. 그들의 결론은 수영 해도 되는데 자기네 보트 같이 타지 않겠냐고 제안이었고 난 당연 흔쾌히 찬성했다.
황폐해진 베르나짜의 항구에 작은 보트를 정박하고 베르나짜에서 유일하게 영업하는 가게인 한 바(bar. 술, 커피, 샌드위치 등을 판다.)에 들렀다. 안드레아가 그라빠(grappa)를 탄 에스프레소 커피를 시키길래 따라 같은 것을 시켜 마셨다. 그라빠라는 술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고 에스프레소에 술을 타 마시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단 코냑은 증류 완료 후 색과 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크통 내에서 오랜 숙성을 거쳐 누런 색과 향을 갖게 된 후 병에 담겨지지만 그라빠는 증류 완료 후에도 이미 맛과 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숙성을 하지 않고 바로 병에 담겨 마실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보통의 그라빠는 꼬냑과 다르게 무색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숙성시킨 그라빠가 점점 보편해지고 있고 따라서 색깔도 갖게 되고 있다. 그라빠라는 코냑, 샴페인, 파르미쟈노-레쟈노 치즈처럼 법으로 그 이름이 보호되어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이탈리아 파트에서 생산되어야만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베르나짜 만큼은 아니지만 첫 번째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도 마을 일부가 상당히 파괴되어 있었다. 한 골목의 경우 모든 일 층 건물이 파괴되어 모두 다 복구 공사 중이었고 심지어 건물 하나 전체가 사라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다르게 세, 네, 다섯 번째 마을인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죠레는 복구가 다 된 것인지, 피해가 작았던 것인지 모두 온전해 보였다. 친퀘테레는 2011년 작년 10월 호우에 의한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상당히 파괴되었던 것이다. 밀라노에서 친퀘테레가 통째로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그 피해는 실로 심각했지만 이것이 전체 마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행이다.
노을이 지는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서 작은 보트에 의지하여 수면 가까이 앉아 낚싯줄을 통해 바다와 나를 연결하였다. 보이지 않는 심연의 바다 속으로 보다 손을 내민 것이다.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도 대자연의 바다와 고요한 결합을 경험 후 글을 썼을까. 하지만 청새치나 상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내 걱정은 점점 커져갔다. 육지까지 손으로 노를 저어 가야 하는 것인가. 이제 해가 지고 날이 컴컴하다. 역시 달이 없기 때문에 저 멀리 보이는 육지의 가로등 말고는 이 대양에는 뚜렷한 불빛 한 줄기 없다. 그러길 30분이 지나자 드디어 모터에 시동이 걸렸고 모두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뭍으로 보트를 달렸다.
산사태로 폐쇄된 다른 보행자 길과 달리 여기부터 마지막 마을인 리오마죠레까지의 보행자 길은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여 한 밤중에 도착하였다. 리오마죠레는 상당히 가파른 산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라 딱히 텐트 칠 만한 여유공간을 찾기가 힘들었다.
다만 만약 텐트 치는 동안에 누군가 보면 십중팔구 다른 데다가 텐트 치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초고속으로 텐트 치고 그 안에 숨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텐트를 거의 다 설치하고 있는데 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장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모든 자질구레한 짐을 들고 텐트 안으로 뛰어 들어가다시피 했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가만히 기다리는데 차가 오더니 바로 텐트 옆에서 멈췄다. 텐트와 차의 거리는 오로지 3미터, 차는 시동을 끄지 않은 채 긴장스러운 엔진 소리를 꾸준히 발산했다. 움직이는 그림자가 텐트 밖에 비칠까 미동 없이 숨을 죽이며 정세를 살폈다. 만약 누가 와서 노크를 하면 아무 대답 없이 무작정 자는 척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아마도 저 차 쪽도 고민하는 듯싶다. 이걸 과연 쫓아내야 할까 말까. 결국 관대한 이탈리아인을 찬양하는 것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 얼마 후 차는 다시 움직여 가버렸고 텐트 마무리 작업을 마치고 곧장 잠에 들었다.
계산대에서 총 얼마냐고 묻는 동시에 자전거 가방 안에 돈이 있는 걸 깨닫고 다시 자전거를 향해 밖으로 등을 돌려 나가는데 갑자기 가게 주인이 “안 팔아!”란다. 뭐지?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지? 동전을 꺼내며 “자 여기 동전 있어.”라고 말하는 순간 내게 다가와 내 손에 든 엽서를 뺏어 들며 “안 팔아! 꺼져!”라고 말한다. 인사불성이었다. 난 알겠다며 나가겠다고 말하고 동전을 다시 필통 안에 넣고 자전거 가방 주머니를 채우려고 하는데 왜 아직도 안 가냐며 이 남자는 입구 옆에 기대어진 자전거를 강제로 잡아 넘어뜨리려고 시도 하였다. 난 당연히 힘으로 자전거를 붙들어 잡아 막았고 남자는 그러더니 주먹을 치켜 들더니 치려는 시늉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이건 무슨 얼토당토아니한 순간인가. 지난번 뱀파이어의 습격 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위축 들어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며, 게다가 이렇게 모욕을 당하는 순간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기에 나 또한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무례함을 일갈하였다. 그러더니 이 남자는 다시 계산대로 향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전거의 방향을 틀고 있는데 남자는 계산대 안에서 몽둥이를 꺼내 들며 내게 욕을 퍼부었다. 이미 길거리 사람들은 이 상황을 관찰했고, 그들은 시비를 가릴 수 있었다. 더 이상 이 더러운 똥을 꾸짖을 필요가 있으랴, 구경난 듯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 한 번 보내 주고 가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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