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너무나 상반되는 말인데도, 신기하게도 둘 다 너무나 맞는 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 나는 이 두 가지의 완전히 상반된 말을 놓고 혼돈을 겪고 있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 너무나 많다.
어린 시절부터 20대를 지나올 때까지만 해도 무조건 ‘아는 게 힘’이었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늘 ‘사람은 배워야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에 입학해라’라는 얘기를 줄기차게 하면서, 그렇게 되면 남은 인생을 좀 더 편하게,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무지’, ‘무식’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그로 인해 초라하고 힘겨운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하셨다. 그야말로 우리들에게 ‘아는 게 힘이다’라는 얘기들을 들려주셨던 것이다.
실제로도 그 시기에는 정말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게 힘이었다. 단어 한 자라도 더 알면, 시사/상식 하나라도 더 알면 당장 시험 점수가 잘 나오고, 주위에서 똑똑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험에 나오는 것들을 잘 알기만 하면 만사 형통이었던 학창시절을 지나 대학에 입학하고 20대가 되면서부터는, 단지 시험에 나오는 것들 외에도 알아가게 되는 것들이 생겨났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어설프게 알아가는 시절...
때로는 부조리와 불평등에 분노하고, 정의감에 불타오르기도 하며, 인생과 세상에 대해 어줍잖은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게 되는 시절...
그 시절만 해도 그렇게 알아갔던 수 많은 것들이 흥미롭고 설레이던, 또 나름대로 뿌듯함을 느꼈을 시절이다.
그 시절만 해도 대학이라는 나름대로 안전한 울타리에 속해 있었고, 우리들에게 실질적인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며, 또 실질적인 책임 역시 지워지지 않았기에, 우리들은 그저 막연한 생각과 느낌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우리들은 어쩌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내가 믿어왔던 진리와 법칙들이 실제로는 사회와 세상에서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직면하게 되면서, 우리는 대학 시절, 20대 시절에 추구하고 싶었던 삶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장 내가 누울 공간과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책임을 실감하면서, 세상은 더 이상 20대 시절 술자리에서 주워 삼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터가 된다.
이론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알고 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유리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고, 또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직접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알게 되는 것들은 어린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추악한 인간의 본성과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진실들이다. 알면 알아갈수록 오히려 알고 싶지 않게 되는 그런 것들...
이럴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알고 봤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당연히 이렇게 되는 게 맞는 일인데도 그 일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렇게 하나 둘씩 알게 되는 것들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우리를 실망시키며, 또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아는 건 힘이 아니라 스트레스고,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차라리 눈을 닫고, 귀를 닫아서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차단하는 게 막말로 신간 편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SF오락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철학이 담겨있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불편한 진실(실제 현실)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모피어스는 편안한 허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 네오에게 두 개의 알약을 주면서 선택하라고 한다.
하나는 먹게 되면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어 예전처럼 편안한 허상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게 되고, 하나는 그냥 예전처럼 편안한 허상의 세계를 살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네오는 결국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는 알약을 선택하고, 실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실제 현실에서는 굳이 그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어서 고통스러울 바에는,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을 선택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은 알아서 힘이 되고, 굳이 알아봐야 피곤한 것들은 모르는 게 좋은데, 현실에서는 그러기가 너무 어렵다.
아마도 아직은 내가 어리기(?) 때문에 이런 혼돈을 겪는 것일 지도 모른다.
좀 더 어른이 되고 나면 이런 일들에도 무덤덤해지면서, 어떠한 것을 알게 되더라도 평온을 유지하는 지혜를 갖게 될까?
혹은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회와 세상에 대해 포기하는 경지(?)에 다다라서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