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가 되었던 삼성과 애플 간 전쟁(?)을 보면서, 문득 전자제품은 만들어 파는 사람도, 구입해서
사용하는 사람도 참 피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요즘 시대에는
늘 새로운 것, 조금이라도 발전된 것을 끊임 없이 내놓지 못하면, 그래서
고객/소비자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잃게 되면 그야말로 추락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잘 나갔던 전자제품 회사들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초라한 처지가 되고, 심지어 존폐 여부조차 위기에 처한 불쌍한(?) 모습들을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늘 연구/개발에 투자하여 조금이라도
발전된 신제품을 끊임없이 내놓고, 또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그것들을 홍보해야 하는 치열한 운명을 타고났다.
요즘 전자제품은 정말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니 소비자들 역시 그 만큼
새로운 변화에 민감하고, 이러한 소비자들을 신상품을 통해 끊임없이 매료시키자니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말
피곤할 것 같다.
차라리 과학기술이 좀 느리게 발달되면 좋으련만, 날마다 빠른 속도로 최첨단화 되어가는 현실이 전자제품 만드는 회사 입장에서는 야속할 것 같기도 하다.
소비자들 역시 전자제품은 우리들의 일상을 편리하게 해주는 고마움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참 피곤한 존재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전자제품은 왠지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꼭 신제품으로 교체해줘야만
할 것 같은 까닭 모를 의무감 내지는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집 안의 가구, 아니면 자가용은 한 번
사면 적어도 몇 년에서 십 년 이상도 사용할 수 있는데, 전자제품은 분명 멀쩡히 작동하는 것들도 가구나 자가용보다
더 빨리 바꿔줘야 하니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사용하는 통기타를 떠올리면서 그 기타를 만드는 회사가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용하는 기타는 마틴(Martin)이라는 미국산 기타다.
에릭 클랩튼, 사이몬
& 가펑클의 폴 사이몬과 같은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사용하는 유명 메이커로, 이 마틴 기타는 현대 통기타의 표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 음악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외삼촌(해바라기의 이주호) 역시 이 마틴 기타 애호가셨기에, 나 역시 반드시 마틴 기타를 갖고 싶었고, 만만치 않은 가격 탓에 기타를 처음 잡고서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드디어 마틴을 장만할 수 있었다.
마틴 기타의 헤드(기타 윗부분)에 보면 ‘C.F Martin & Co.’라는 회사 로고와 함께, ‘EST 1833’이라고 새겨져 있다.
C.F Martin은 이 회사의 창업주 Christian Frederick
Martin의 이름이고, ‘EST 1833’은 ‘Established
in 1833’이라는 뜻으로, 즉 마틴 기타가 1833년도에 탄생했다는 얘기다.
현재는 Christian Frederick Martin 4세가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거의 20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가문 대대로 가문의 성(Martin)을 딴 브랜드의 기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마틴 기타의 모델들은 신제품이라는 게 거의 없다. 그저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몇 개 안 되는 고전 모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이 생산되고, 또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다.
첨단 기술이나 신기능이 첨가될 필요가 없이, 그저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마틴이 보유한 목재 건조, 가공, 만듦새의 전통이 유지된 고전 모델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될 뿐이다.
또, 마틴은 굳이 마케팅이나
광고를 할 필요도 없다. 이미 마틴이라는 브랜드는 그 퀄리티와 소리의 우수성을 긴 세월 동안 인정받았기에,
회사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마틴 기타를 찾는다.
그리고, 같은 모델이더라도 생산된
지 수십 년 동안 잘 보존되어 소리의 길이 잘 든 오래된 기타는 비록 흠집이 조금 있을 지라도 오히려 신제품보다 더 높은 중고가격에 판매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새로운 유행의 제품이 나오면 바로 지난 해, 심지어 지난 달에 나온 제품조차 바로 한물 간 취급을 당하는 전자제품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부러울 일이다.
이들은 또한 특허 전쟁을 벌일 일도 거의 없다. 구조와 디자인이 99% 똑같은 기타일지라도, 한국돈으로
10만원짜리 제품도 있고, 수백만 원짜리 마틴 제품도 있는데, 두 기타의 소리는 천지 차이다.
사용된 목재, 그 목재의 건조 년수,
기타의 소리/톤을 만드는 노하우에 따라 해당 기타의 독보적인 무형의 퀄리티가 발생하는
만큼, 굳이 다른 기타와 경쟁을 벌이거나 특허 갈등을 벌일 일이 없는 것이다.
내가 나중에 어떤 비즈니스를 하게 되거나 아니면 음악이나 글을 통해 창작품을 만들게
되면,
마틴 기타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철 없는 생각을 해보며 오늘도 나는 내 소중한 마틴 기타를 꺼내들고 그 심오한 소리에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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