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극우당(Front national)과 문선명의 인연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은 자신의 사상을 전세계에 전파하고자 했다. 문선명은 프랑스에서 그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극우당을 선택하였다. 극우당의 대표, 졍마리르뺑이 권력에 오르도록 자금을 대었다. 이 이야기는 과거에 통일교 신자로서 극우당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프랑스인의 진술을 프랑스 주간잡지les InRockuptibles(No876,9월 12일-9월 18일)가 정리해 전했다.
"문총재는 공산주의가 세계를 위험하게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발상에서 만들어진 유럽 causa운동(공산주의 퇴치운동)은 소련연합에 정착한 이데올로기가 불러 올 재앙을 고발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 강연을 개최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 강연의 대상은 엘리트들, 즉 정치와 경제부문에 잘 자리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1994년에 극우당을 떠났고 1997년에 통일교와 결별한 삐에르 세이락은 또 이렇게 회상한다. "통일교는 그당시 반공산주의 운동에 자금을 대었고 미국에서는 공화당에 프랑스에서는 극우당에 접근했습니다. 1985년, 통일교의 박보희대령은 프랑스의 쌩끌루(Saint-Cloud)에서 졍마리 르뺑을 만났습니다. 박보희는 쉽게 졍마리르뺑에게 빠져들었습니다. 박보희는 한국에서 공산주의와 싸웠고 졍마리르뺑은 인도차이나에서 공산주의와 싸웠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빠르게 협의점을 찾아냈고 통일교 내에서 한사람이 극우당에 들어가야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극우당에 들어갈 사람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난,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졍마리뺑에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1986년에 극우당 대표로 난,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습니다. 그 댓가로 통일교는 극우당에 막강한 자금과 탄탄한 국제적 인맥을 제공했습니다. 목적은 졍마리르뺑을 권력의 자리에 올려앉힌후 통일교의 생각과 일치되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88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때 통일교는 극우당의 장비 설치에 많은 자금을 대었습니다. " 극우당을 전문으로 하는 역사학자 니꼴라 르부르그(Nicolas Lebourg)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우리는 통일교가 극우당에 1986년까지 2천만 프랑 내지 3천만 프랑(3백 5십만 유로 내지 4백 5십만 유로) 을 제공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졍마리르뺑은 자신의 대통령 선거 운동때 극우당 장비 설치에 통일교의 도움을 받은 것은 인정하면서도 자금을 받은 것은 반박한다. 졍마리르뺑은 오늘 날 이에대해 "우리는 통일교의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통일교는 우리에게 굉장한 투사들을 보내주었습니다. 1986년에 유럽전역에서 약 30명정도의 투사들이 마르세이에 도착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마르세이도시 전체를 포스터로 도배하고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굉장히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고 말했다. 니꼴라 르부르그는 " 통일교신자들의 믿음은 너무나 전문적이어서 하느님의 강림을 준비하는 기독교 세력의 정책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같았습니다."고 밝혔다. 문선명은 프랑스 대통령 후보 르뺑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주기 위하여 그에게 자신이 가진 국제 인맥수첩을 제공하였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이 추락한 다음인 1986년 극우당 대표 졍마리르뺑은 필리핀 군도의 새대통령이 된 코리 아끼노(Cory Aquino)를 문선명의 인맥을 통해 만나게 된다. 특히 1987년 2월에는 통일교의 힘을 입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 옆에서 사진을 찍게된다. 그 당시 문선명은 워싱톤의 힐튼호텔에 공화당의 핵심 인물들을 초대했다. 그 자리에 문선명의 오른팔인 박보희가 자리하고 있었다. 박보희는 당시 New world communications 회사의 사장이었으며 워싱톤 타임지를 주관하고 있었다. 바로 이 박보희 대령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르뺑을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일년전부터 준비되었던 이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문선명과 극우당의 허니문은 오래가지않았다. 이 유명한 사진을 찍은지 몇달후 졍마리르뺑은 프랑스 라듸오 방송국, RTL과의 인터뷰에서 " 히틀러의 가스실은 2차 세계대전의 사소한 사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말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통일교 입장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통일교는 졍마리르뺑에게 공개 사과를 표명하라고 권했지만 졍마리르뺑은 공개사과를 거부했던 것이다. 삐에르 세이락은 "통일교는 졍마리르뺑의 이러한 발언에 실망하고 경악해서 1988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이후에 했던 협약, 공산주의 퇴치운동과 극우당 사이에 한 협약을 중단해버렸습니다. 게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결되자 공산주의 퇴치운동은 불필요하게 되었고 그결과 극우당의 재정은 궁핍해졌습니다." 고 회상했다. 프랑스 유로저널 이혜란 인턴기자 eurojournal28@eknew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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