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피렌체의 또 다른 이야기들
집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향 내 속에 보이는 작은 불상과 여러 동양적 물건들이 보였다. 키아라는 자화상 및 여러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을 즐기는 무용 강사이다. 커다란 빈 방 하나를 받아 짐을 풀고 채식주의자인 키아라를 위해 지난번 피사에서 만든 비슷한 요리를 만들어 같이 저녁 식사하였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문어가 바닷물 속에서 유영하는 걸 찾아 봐봐. 얼마나 아름다운지 깜짝 놀라게 될 거야.”
과학고에 입학하여 인격이 보다 굳게 형성되어가고 성인이 되어가는 유년 시절에 인적 없는 산골의 작은 학교에서 2년 동안 기숙사에 주거하며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과 등지고 주입식 지식만 꾸역꾸역 먹으며 사육되었다. 수학, 과학의 지식은 열심히 쌓았지만 감정을 다루는 일은 남들 보다 덜했던 게 분명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야채 및 고기 반찬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이런 단순한 논리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그동안 다소 감정을 잊어버린 단순한 사람이 된 것인가? 살짝 마른듯한 감정을 촉촉히 적셔줄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필요하다. 여행 도중 구원을 만날 수 있을까.
채식으로 식욕 및 영양을 채우는 관점에서 본다면 야채 음식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서구 문화에서 채식으로 식욕 및 영양을 충족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로렌조도 제대로 식욕을 자극하지 못하는 혹은 맛을 못 냈던 단순 야채 먹을 거리에 다소 질렸던 것 같다.
채식 메뉴가 구비된 식당도 제대로 없고 채식주의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만큼 우리 사회에서 채식은 아직 불편하지만, 식물성 식품을 개발한 우리의 요리는 분명 채식주의자들을 만족시켜줄 커다란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좋은 식단을 서구에 소개하고 싶은데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메일로 키아라에게 사실을 설명하고 사과했는데 키아라는 자신의 채식주의는 강박적이지 않으며 만약 육류음식이 남아 버리게 되면 차라리 자기가 먹는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날 위안해줬다.
지난 밤에 같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던 사람들의 무리 중 중심이 되어 기타 치던 남자는 여전히 같은 곳에 있었다. 몇몇 사람들과 광장 옆 교회 벽에 기대 앉아 역시 낭만을 즐기는 듯 했다. 다만 그때 밤처럼 노래를 부르진 않는다. 다소 쉬고 있는 모양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10일간 5개국의 20여명 청년들이 모여 그 작은 마을 주민들을 위한 연극을 준비하고 공연했다. 그들은 다시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의 한 청년 프로그램에 한 달 후에 같이 참가하였고 그곳에서 그들의 연인 관계는 시작되었다. 당시 나디아는 봉사활동을 위해 체코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청년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2주에 한 번씩 편도 17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나디아가 이탈리아로 마르코를 찾아가거나 마르코가 체코로 나디아를 찾아가거나 혹은 중간에 만나 일 년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 그 후 나디아는 체코에서 봉사활동을 끝내고 몰도바로 돌아갔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두세 달짜리의 오페어(au pair)일을 마르코가 사는 피렌체 근처에서 운 좋게 찾아 거리적으로 서로가 가까이 지내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않고 나디아가 몰도바에 머무는 기간에는 마르코가 가끔 항공편으로 나디아를 찾아가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현재 나디아는 피렌체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 중이고 마르코는 체육관에서 강사로 일을 하며 둘은 낭만이 숨쉬는 피렌체의 작은 아파트에 함께 미래를 꿈꾸고 있다.
풋내기적 감성을 반성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해보지만 현재 주어진 것은 내가 사랑할 자전거뿐,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 진다는 말을 진실한 인연을 간절히 바란다고 억지로 만들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 성숙과 순수를 함께 잘 가꾸고 간직하자. 둘째 날 저녁은 삼겹살, 양파, 마늘, 버섯, 고추장, 올리브유로 내가 “코리안 바비큐”를 선보였고 일부로 약간 남긴 고기와 함께 밥까지 섞어 볶는 완결 코스 요리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행이도 이들은 맛있게 먹어줬지만 물론 나 또한 오랜만에 한국의 맛을 배불리 느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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