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국내외 기업들이 잇따라 구설에 올랐다.
단순 구설인지,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위기로 치달을지는 기업과 최고경영자(CEO) 하기에 달렸다. 기민하게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곳이 있는가 하면 대충 뭉개려다 더 큰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지난 2일 현대ㆍ기아차가 북미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연비 표시를 낮추고 보상하기로 했다. 엘란트라(아반떼) 등 13개 차종 90만대가 대상이다.
미국 환경보호청 연비 검사결과를 확인한 뒤 자발적으로 취하는 조치라지만 사실상 리콜이다.
회사 측은 공인연비 측정 과정에서 연비에 영향을 미치는 저항값을 현지 상황에 맞게 설정하지 않아 생긴 오류라고 해명했다. 제품을 판매한 기업이야 고의가 아닌 오류라지만, 소비자들로선 속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같은 날 애플은 신문에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을 베끼지 않았다"는 글을 두 번 싣는 망신을 당했다. 지난달 영국법원 판결에 따른 1차 공지에서 단순 사과에 그치지 않고 "삼성 제품은 애플만큼 멋지지 않다"고 비꼬는 등 꼼수를 부리다 법원으로부터 재공지 명령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수거 소동을 일으킨 '발암물질 라면' 파동도 기민한 위기관리와 사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안전하다고 했다가 자진회수로 태도를 바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오락가락 행정부터 문제였다. 사태가 불거진 뒤에야 "매 끼니 평생 섭취해도 무해한 수준"이라고 강변한 농심도 소비자 신뢰를 얻진 못했다. 농심으로선 라면수프 원료 납품업체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식약청에서 통보받은 지난 6월, 즉각 소비자에게 알리고 자진회수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건강에 유해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불량원료를 사용한 점은 사실이기에.
기업이든 정부든 때로 실수와 잘못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태 초기 책임 있는 인물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것이다. 마음이 상한 소비자나 국민도 진심어린 사과를 받으면 기분이 풀리고 사태도 점차 누그러진다. 하지만 현실은 기업이나 국가 지도자들 대부분 사과에 인색하다. 공개 사과에 따른 부담에 잘못을 인정하면 조직 내 위치가 흔들린다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사과의 시기나 진정성으로 볼 때 지난달 타계한 존슨앤존슨 제임스 버크 회장의 사과가 가장 완벽했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누군가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넣어 7명이 숨졌다. 식품의약국(FDA)은 시카고 지역의 타이레놀을 모두 수거하라고 권고했다. 제임스 버크 회장이 직접 나서 사태에 책임지겠다며 사과했다.
시카고만이 아닌 미국 전역에서 3100만병을 회수했다. 2억4000만달러의 손실을 감수했다. 약품도 쉽게 뜯고 다시 붙일 수 있는 캡슐에서 3중 봉합 알약으로 바꿨다. 타이레놀은 현재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하며, 존슨앤존슨은 윤리경영 모범기업으로 꼽힌다.
이와는 달리 일본 최대 유제품업체 유키지루시유업은 2000년 1만5000명의 집단 식중독 사건에 대한 원인 규명과 사과 대신 회사 입장 방어에 급급하다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10년 도요타자동차의 사상 최대 리콜사태는 가속페달의 부품 결함이라는 '품질불량'이 화근이었지만 대응 과정에서의 거짓 해명과 늑장 대처에 따른 '신뢰불량'이 결정타였다.
기업인이나 정치인이나 자진 리콜과 사과를 기피하다가는 강제 리콜 당한다. 변명만 늘어놓고 강경 입장을 고수하면 조직은 더 경직되고 고객과 국민의 마음은 멀어진다.
이때 흔히 법을 안다는 변호사들이 '사과(apology)' 대신 '유감(regret)'이란 표현을 쓰라고 조언한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 사장도 사과 대신 "연비 오류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을지 몰라도 소비자의 마음에는 충분하지 않을게다.
기업은 그 자체로 한 사회와 공존하여야 한다.
오직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은 영속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남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