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그리고 권위주의, 개혁만이 바꿀 수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규정한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그 사람 혹은 그 조직의 존재양식을 짐작해 보는 건 어렵지 않다.
겸손한 존재의 입에선 겸손한 언어가 나오고 오만한 자의 입에선 오만한 언어가 나오게 돼 있다.
"수사는 검사가 경찰보다 낫다" "의학적 지식은 의사가 간호사보다 낫지 않은가" "사시를 왜 보고 검사를 왜 뽑나"…. 현직 고검 검사 비리 수사를 맡기 위해 임명된 김수창 특임검사가 내뱉은 말들로 시끄럽다.
이 말들에서 검찰 조직의 '오만과 편견', 나아가 선민의식을 읽어내는 건 필자만의 지나친 민감증 탓일까?
대한간호협회가 "간호전문인으로서 지금까지 가져 왔던 소명의식과 자긍심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발언"이라며 비판성명을 낸 데는 이유가 있을 터. 의사와 간호사는 영역이 다를 뿐, 상하 관계가 아니다.
양 집단 모두 환자생명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검찰과 경찰 관계도 마찬가지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역할이 다를 뿐, 검찰이 경찰 위에 군림하거나 수사 능력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한 부장검사는 최근 내부통신망에 이런 글을 올렸다. "서울지방경찰청의 수사 능력은 형사부 검사실의 수사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다." 검찰의 한 구성원으로서 고뇌에 찬 양심고백을 한 셈이다.
2008년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씨의 측근과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의 동생 유순태 대표 등으로부터 8억여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고검 김 모 검사에 대한 검·경의 수사권 다툼이 예사롭지 않다. 경찰이야 오랫동안 조 씨의 자금을 추적해 오다 검사의 비리 부분을 포착했으니, 야심차게 수사를 벌일 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뒤늦게 '가로채기' 수사로 열을 올리는 검찰에 대한 여론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특임검사팀은 검사만 11명에 수사관이 15명이나 된다. 앞선 '그랜저 검사'와 '벤츠 여검사' 특임검사팀 검사 수가 4~5명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가히 초대형이다. 마치 이번 기회에 검찰 비리의 뿌리라도 뽑겠다는 기세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를 순수하게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경찰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고 비리 검사라 할지라도 경찰의 손에 의해 수갑이 채워지는 수모만은 면하겠다는 자존심의 발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머리 좋은 검찰 조직이 이처럼 불리한 여론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잘 알면서도 가로채기 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경찰과의 수사권 경쟁에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에는 오만함과 조직 이기주의로 비친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검찰의 자세는 '시대정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이다.
대선 후보 3인방인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공약 우선순위에 검찰개혁이 왜 들어가 있는지 검찰은 자성해야 한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검찰개혁안은 대검 중수부 폐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 검사의 기소 재량권 통제, 검사동일체원칙의 폐해 시정,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이다.
검찰은 기를 쓰며 반대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는 사안들이다.
이 모든 개혁안의 요체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데 있다. 기실 대한민국 검찰 권력은 너무 세다.
오죽했으면 검사들의 표상인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마저 검찰 개혁을 주창하고 있을까?
특임검사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의 건곤일척의 싸움은 검찰의 승리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미 그 징후는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수사력에서 검찰이 우수하고 경찰이 열등해서가 결코 아니다.
검찰이 헌법과 법률을 내세워 체포, 압수수색, 구속 등 강제집행권과 지휘권을 행사할 경우 경찰이 쓸 카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임검사팀의 승리는 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 비등의 임계점을 더욱 낮출 뿐이라는 사실이 이번 사건의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