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이라니 믿기질 않는다.
작년 12월의 기억들이 아직도
새록새록하고, 2012년 새해를 맞이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린 것일까?
새해를 맞이하면서 ‘언제 또 한 해가 지나려나’
했는데, 막상 12월이 되니 ‘벌써 한 해가 지나는구나’ 싶다.
갈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 너무나 앞만 보며 살았기
때문일까?
그 어느 해보다 정신없이 지내왔던 올 한 해, 언제나 그렇듯 지나고 나니 아쉬운 것들도 너무나 많고, 또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들도 너무나
많다.
언제나 그렇듯 새해를 맞이하며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것들, 다짐했던 것들, 계획했던 것들을 대부분 이루지 못한 채 또 이렇게 한 해를 떠나보내게 생겼다.
학창 시절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방학기간 동안에 이루고자 하는 근사한 계획들과
다짐들을 하곤 했다.
방학 초반에는 방학기간이 제법 길게 느껴지고, 방학이 여전히 많이 남은 듯 해서 여유를 부리다가, 어느새 개학날이 다가오고 방학기간에 이루려
했던 계획이나 다짐들이 물거품이 되어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럭 저럭 밥벌이를 하며 제
구실(?)을 하며 사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여전히 그 어린 시절의 방학처럼 늘 그렇게 계획대로,
다짐대로 살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실망도 하고 아쉬워하며 한 해, 한 해를 떠나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12월은 괜히 우리들을 겸허하게
만드는 것 같다.
12월은 눈 앞의 것들만을 쫓아 정신 없이 앞만 보며 한 해를 달려왔던 우리들에게
잊고 지냈던 시간의 무게를, 세월의 속도를 깨우쳐준다.
이렇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과연 무엇을 위해, 또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해준다.
지나버린 한 해 동안 목숨을 걸듯 몰두했던 일들이, 크게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미워했던 일들이 실제로는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반면에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는 것들을 소홀히 여기고, 잊고 지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게 바로 12월이다.
그래서, 비록 한 달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일 지언정, 12월 한 달 동안은 그래도 지난 11개월 보다는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용서하면서,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마음과
시간을 할애하도록 만드는 신비한 힘을 지닌 12월이다.
문득 5년 전
12월이 생각난다.
2007년 12월, 나는 영국 유학생 시절을 마치고 가까스로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단기 계약직으로 취업을 해서 일하던 중, 극적으로 취업비자를 받도록 결정된 게 바로 5년 전 12월이었다.
그 때까지 2년 반 동안 유학을 하는
중에는 한국에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고, 취업비자가 확정된 뒤에야 비로소 한국행 비행기표를 구입했더랬다.
아무런 기약 없이 도전했던 영국행, 유학 후의 일들을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던 유학생 시절, 그 시간들을 뚫고서 드디어 부모님을
뵈러 2년 반 만에 한국을 간다며 어찌나 들떴었는지...
그리고 나서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당시만 해도 여전히 교편을 잡고 계셨던 아버지께서는 어느덧 퇴직을 하셨고, 나 역시
이제 서른을 훌쩍 넘은 6년 차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숨 가쁘게 지내왔던 지난 날들, 돌아보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 지워버리고 싶은 얼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돌아가고픈 기억들, 다시 마주하고픈 얼굴들이 더 많음에 삶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새삼 느껴보며, 그 모든 것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도 12월에는 자신이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며 누구나 시인이나 수필가가 될 수 있는 달이 아닐까?
누구든 한 해를 돌아보면 적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사람이라도 떠오를테니 말이다.
한국에 비해서는 눈 구경을 하기가 너무나 힘든 영국이지만, 그래도 꿈 속에서는 눈이 내린 겨울날의 풍경 속에 있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들, 소중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보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한 해의 마지막 순간들이나마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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