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64년만에 국가의 꿈 이뤘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반세기 만에 '국가' 지위를 인정받았다.
지난 11월 29일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표결권 없는 옵서버 '단체'에서 옵서버 '국가'로 격상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188개국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138개국이 찬성, 41개국이 기권했고 미국과 이스라엘, 캐나다 등 9개국만 반대표를 던졌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번 사안이 유엔이 아닌 양자 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며 심하게 반발했다. 이스라엘의 오랜 우방이었던 영국과 독일조차 기권표를 던지며 돌아섰다.
1974년 11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유엔 총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유엔의 '옵서버 단체' 자격을 얻은 이래 38년만에 획득한 유엔의 옵서버 국가 지위 부여는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간접 승인을 했다는 의미가 있다. 옵서버 국가가 되면 유엔에서 주권국가로 인정받아 유엔 총회 참석은 물론 국제협약 체결, 유엔 산하 국제기구 가입 등이 가능해진다.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이스라엘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수 있어 국제무대에서 보폭을 더욱 넓히게 됐다. 팔레스타인은 앞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인 전쟁과 2008년 12월∼2009년 1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 등을 ICC에 제소할 것으로 보인다. 또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에 따라 팔레스타인 영토를 인정받으려고 국제사회에 호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각종 보복 발표
이에 대해 이스라엘이 유엔(UN)의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 인정에 대한 보복 조처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잇단 보복에 나섰고, 영국, 프랑스,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UN총회 결정 다음 날인 11월 30일 지금까지 미 역대 행정부에게 절대 정착촌을 짓지 않겠다고 약속할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경계지역인 ‘E1’에 유대인 주택 3000호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12월 2일에는 이스라엘 재무부는 1994년 파리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을 대신해 징수하던 관세와 통행세 등 팔레스타인 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각종 세금을 더 이상 팔레스타인에 송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자국에 불리한 사안이 생기면 보복 차원에서 팔레스타인에 전달해야 할 세금 송금을 수차례 중단한 바 있다.
이스라엘 현지 일간 하레츠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여론은 경제적 보복 등 보다 심각하고 실질적인 조처를 수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번엔 단지 말로 비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태도가 매우 실망스럽다. 동예루살렘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 구축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라고 공격했다.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도 성명을 내고 “유럽연합은 그동안 동예루살렘을 포함해 서안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계획은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미국 행정부도 이스라엘 새 정착촌 건설을 맹비난하면서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정착촌 문제를 포함해 모든 문제에서 일방적인 행동에 반대한다. 그런 행위는 협상에 의한 평화정착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오늘 여러분의 꿈이 현실이 됩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마무드 압바스 수반과 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각각 유엔에서 연설하는 사진이 담긴 포스터가 라말라의 무카타 인근에 서 있다.
팔레스타인(Palestine)이란 ?
오늘날의 이스라엘 국가를 이루는 영토는 과거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가나안, 이스라엘, 유다, 유대 등이 모두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로마는 그 지역을 팔레스티나라고 명명했는데, 그 목적은 135년에 일어난 마지막 유대 반란을 진압한 뒤 이 지역에서 종교를 뿌리 뽑기 위해서였다. 옛날 속주 이름인 유다는 유대식 명칭이었으므로 더 이상 쓰지 못하게 했다.팔레스티나라는 명칭은 고대에 호전적인 민족이었던 블레셋에서 따왔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심하게 괴롭혔으므로 유대인들에게는 그보다 더 불쾌한 명칭이 없었다. 팔레스티나의 영어식 명칭이 팔레스타인이다.
아랍인들이 이곳에 살기 오래전부터 이 지역은 이스라엘인, 블레셋인 등 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은 아랍인이나 무슬림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재 그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그곳은 무슬림들이 침략하기 전까지 300년 동안이나 그리스도교 지역이었다. 로마 시대부터 20세기까지 그 지역은 내내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렸고 터키의 오스만 제국을 비롯해 여러 이슬람 제국들이 소유해왔다.
중세에 잠시 유럽에서 온 그리스도교 십자군이 이 지역의 일부를 점령하고 예루살렘 왕국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터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곳에서 물러났고, 이후 영국이 지배하다가(그때도 팔레스타인이리고 불렀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되었다. 지금도 무슬림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국가를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며, 그들이 그 지역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믿고 있다.
팔레스타인(Palestine)의 지리적 배경
영어로는 팔레스티나(Palestina)라고 한다.
원래 팔레스타인(Palestine)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지중해의 동해안 일대를 가리키는 지역명으로 동쪽은 요르단강(江), 남서쪽은 시나이반도, 북쪽은 레바논, 북동쪽은 시리아에 접한다.
즉, 팔레스타인은 현재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합친 영토이다. 하지만 현재는 지역의 80%는 이스라엘 영토이고 나머지 20%만이 팔레스타인이다.
오늘날 팔레스타인(Palestine)은 서아시아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구역인 웨스트뱅크(West Bank)와 남서단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가자지구(Gaza Strip)만을 가리킨다. 천연자원이 거의 없으며, 요르단강 서안의 동부는 황무지인 반면, 서부는 경작지나 목초지대가 있어 농축산물이 생산된다. 또한 가자지구는 일부 경작지에서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으나, 목초나 삼림지대는 거의 없다. 강수량이 매우 부족하며 이마저 대부분 증발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인구 구성은 팔레스타인계가 대부분이며, 유태인은 극소수이다. 주로 아랍어를 사용하지만, 히브리어와 영어도 널리 통용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종교는 이슬람과 기독교 신자들이 90%에 가까우며, 유태교 등 기타 종교를 믿기도 한다.
팔레스타인(Palestine)의 역사적 배경
AD77년 유대는 로마에 의해 마사다 전투에서 완전 패망하고 지도상에 이스라엘은 흔적도 남지 않았고 이 민족들은 뿔뿔리 흐트저 각지역에서 시나고그를 만들어 살아왔다.
2차대전이 한창일 무렵 이스라엘 민족지도자 (대표 벤구리온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들은 영국과 협상을 시도하여 전쟁비용을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종전후 옛 유대땅에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받게되었고 이 사실을 안 독일 히틀러는 가공할만한 유대인 학살을 감행했으며, 영국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수수방관 하게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당시1947년 영국 정부는 이스라엘에게도 승낙을 하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에게도 반대도 승낙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을 취한 사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영국과의 협상중에 각지에 흐트진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에 강제 이주를 감행하게 되었다.
이주와 동시 건국을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재빨리 승인을 받는 조치를 취하자 2천년을 살던 팔레스타인 인들은 졸지에 땅을 빼앗기게되고 난민으로 전락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내건 이유는 " 이 땅이 우리 선조땅이다. 그 근거는 구약성서에 쓰여져 있다." 라는 바로 그 한마디 뿐이였고 팔레스타인은 그 당시 구심점이 없는 유목민 집단 거주 형태이므로 조직적인 구성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최대의 약점이였다. 유대인들이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운동에 따라 고대 조상들이 살았던 이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2000년간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으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해왔다가 2011년 10월 31일에 유네스코(UNESCO)로부터 유엔 산하기관 최초로 정회원 국가 지위를 인정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회원국 가입을 반대하며 나섰고, 유네스코에 재정을 지원하던 미국은 지원 중단 성명을 발표하였다.그로부터 1년여 만에 팔레스타인은 유엔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인정받게 됐다.
2일 팔레스타인 국민들이 행정수도인 라말라에서 국가 지위 승격을 축하하는 집회를 열면서 기뻐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분쟁
이렇게 강대국의 이중적 외교방식으로 빗어진 중동 사태는 1947년 UN이 팔레스타인 지역 일부를 유대인에게 할당하면서부터 4 차례의 중동전쟁으로 그 열기가 더욱 악화 되었고 현재에 이르는 국면이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영국 위임통치령'으로 불리던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 국가 수립을 선언하자 아랍 세력들은 즉각 무력으로 대응했다. 1949년 이스라엘과 아랍권이 휴전했지만 이스라엘은 1947년 유엔 총회 제안 당시보다 더 넓은 영토를 얻었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의 '6일 전쟁'을 통해 요르단이 점령했던 요르단강 서안지구, 이집트가 통치하던 가자지구, 시리아의 골란고원까지 손에 넣었다.
1973년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제 4차 중동전까지 양측은 모두 네 차례의 전면전을 치렀다. 이후 국제사회의 중재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간에 수많은 평화협상이 벌어졌지만 양측의 불신과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중동전쟁
1948: (1차중동전) 이스라엘-아랍연합군(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아랍 해방군 성전 부대)
1956: (2차중동전) (수에즈운하분쟁)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연합군-이집트)
1967: (3차중동전) (6일전쟁)(이스라엘-아랍연합군(9개국)
1970: (아랍연맹 PLO- 이스라엘분쟁)
1973: (4차중동전) (욤키프르전쟁)(이스라엘-아랍연합군(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1982: (이스라엘-레바논전쟁)
1987-1993: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전쟁
1982-2000: (이스라엘- 레바논 전쟁)
2000-2007: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2차전쟁
2006 :(이스라엘 -파타 하마스전쟁)
2007년5월 이스라엘-레바논분쟁
2008년12월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2010년 6월 이스라엘 가자지구 구호선 공격
2012 년 하마스 이스라엘 미사일 포격전개시
유로저널 김세호 기자
eurojournal01@eknew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