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무형문화재 6호이자 이강주 회장 고천(古泉) 조정형(趙衡鼎) 선생으로부터 듣는 술 이야기
우리 선조는 먼 과거부터 문예(文藝)와 풍류를 즐겨왔고, 그 속에는 늘 '술'이 있었다. 한국인의 노곤함을 달래고, 기쁨을 배가시켜 주었던 우리의 술, 전통주. 이를 평생의 반려자로 삼았던 고천(古泉) 조정형(趙衡鼎) 선생에게서 재미있는 세계의 음주문화를 들어보자. |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건배 구호를 외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주당들이 가장 많이 쓰는 구호로는 ‘건배’가 꼽히지만, ‘위하여’ ‘지화자’등 우리 고유의 흥겨움이 담겨있는 구호가 있는가 하면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나 ‘개나리(계급장 떼고, 나이는 잊고, relax·refresh)’ 등 신세대 건배 구호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치어스(Cheers)’를 쓰고, 일본에서는 ‘간빠이’,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프로스트(Proost)’, 프랑스에서는 ‘아 보뜨르 쌍떼(A votre sante)’, 중국은 ‘칸페이’, 캐나다는 ‘토스트(toast)’, 러시아는 ‘스하로쇼네’나 ‘즈다로비에’, 브라질은 ‘사우데(saúde)’를 써서 술좌석의 흥을 돋운다.
자, 해외에서 현지인들과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다면 우리 고유의 건배 구호를 가르치면서 건배를 제안해 봄은 어떠할까. 더불어 그들의 건배구호와 술자리 문화를 배워보자.
1. 일본
일본의 대중적인 술집은 ‘이자카야’라고 불리는데 ‘술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이런 선술집은 눈에 잘 띄게끔 문 앞에 ‘아카초칭’이라 불리는 빨간 종이등을 내건다.
한국처럼 직장 동료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일은 흔하지만, 술을 강요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방이 시킨 술을 따라서 늘 가득 차도록 하는 것은 우리네와 비슷하나, 우리처럼 바닥이 드러났을 때가 아니라 빈 잔이 되기 전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의 선술집에서는 한국에 비해 취하여 주정하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은데, 이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무엇보다 꺼려하는 문화 속에서 형성된 술집 풍속도이기도 하거니와, 원거리 통근이 흔한 일본에서 마지막 전차를 놓치지 않으려는 현실적 인식도 작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또한 ‘와리깡’이라고 하여 일행이 술값을 1/n로 나누어 내거나, 아예 자기가 먹고 마신 것에 대한 값만 내는 일이 흔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더치페이’로 볼 수 있는데, 한 사람에게 큰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라 할 수 있겠다.
2. 중국
중국에서는 무려 4500 여 종의 술이 생산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마오타이, 오량액 등이 명주(銘酒)로 꼽힌다.
중국 명주들의 특징이라면 45도 이상의 독한 술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주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갈, 즉 고량주라 칭하는 백주(바이지우.白酒)를 즐겨 마시는데, 이 바이지우는 중국인들에게 일상적인 술일 뿐 아니라 주요한 교제수단이기도 하다. 바이지우는 대부분 쌀이나 보리, 옥수수 등 곡식을 주원료로 하고, 바이지우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곡식은 연간 1,400만 톤이 넘는데, 이는 북경시민 전체가 3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엄청난 분량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의 술자리에서는 상대방에게 꾸준히 술을 권하는 것, 상대방의 술잔이 아직 비지 않았어도 계속 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업관계에서 술자리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한국의 ‘술상무’에 비할 만한 배주원(陪酒員)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중국의 주류산업은 매년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 국가에서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바이지우 대비) 알코올 함량이 낮은 과실주나 맥주를 권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포도주의 소비가 늘어나는 한편, 젊은이들은 바이지우보다 맥주를 선호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3. 독일
맥주가 이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0세기 쯤이다. 맥주를 마신 역사가 긴 만큼, 음주문화도 성숙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새벽까지 마시더라도 고함을 치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으며, 여러 명이 밖에서 모이는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미리 운전자 1명을 정해두고, 이 운전자는 술자리에서 대화만 즐기되 음주는 하지 않는다. 이웃나라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더치페이가 생활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주량은 스스로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절제되고, 강제로 권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뮌헨의 10월 축제(October Fest) 때에는 보름 동안 대규모 인파가 전 세계에서 몰려와 독일의 맥주만을 위하여 축제를 벌인다. 1810년 황태자 루트비히와 작센의 테레사 공주와의 결혼식을 축복했던 축하 행사에서 비롯되었으며, 해마다 500만명의 사람들이 운집하며 축제기간 동안 소비되는 맥주는 무려 400만 잔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4. 네덜란드
‘Dutch Courage'라는 말을 아는가.
두려운 일을 앞두고 술을 마심으로써 자신감과 담대함을 얻을 때 쓰이는 말인데, 네덜란드를 발상지로 하는 ‘진(Holland Gin)’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1650년 네덜란드의 약학교수이자 의학박사인 실비우스(Dr. Sylvius)는 호밀에서 증류한 주정과 쥬니퍼 베리 열매의 오일을 섞어서 약용술을 개발해 제네버(Genievre/Jenever)라 이름 붙인다. 스페인에 맞선 네덜란드의 독립전쟁(8년전쟁)에서 네덜란드를 돕던 영국해군은 제네버를 접하게 되고, 전투전에 제네버 한 잔을 마시면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하여 이 술을 ‘Dutch Courage', 네덜란드의 용기라고 칭하였다. 무색투명한 진은 뒤에 영국으로 건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런던 드라이 진이 탄생하기도 한다.
현재는 음주 후에 얻는 담대함, 용기를 일컬어 ‘Dutch Courage'라 부르기도 하는데, 클럽에서 여성에게 대쉬하기 전 술을 마시는 행동을 ‘Dutch Courage'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니 재미있다.
패밀리맨 성향이 강한 네덜란드에서는 회식문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전에는 저녁식사 후 가족들과 TV를 보며 집에서 편안히 제네버 병과 작은 술잔을 들이키는 가장의 모습을 흔히 접할 수 있었으나 젊은 세대에서는 이 제네버를 찾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네덜란드에는 ‘크위스펄 비르(Kwispel Bier)'라는 이름의 또 다른 재미있는 술이 있다. 사냥을 마친 후 주인만 맥주로 목을 축이는 데 대해 미안한 마음에서 발명된 애견용 맥주인데, 알콜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고, 개들이 좋아하는 적당한 맛을 낸 음료라니,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네덜란드인의 국민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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