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정담(Fireside chat) 4

by eknews09 posted Jan 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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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정담(Fireside chat) 4
 
이제 그 무성했던 선거 이야기도 끝날 때가 된 것같다.
흔히 사람들은 "이제 투표도 하고 선거가 끝났으니 나머지는 정치하는 이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소극적인 시민의식을 갖기 쉬우며 선거가 마치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듯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잘 못되고 미비해도 선거를 통해서 집권 또는 당선만 되면 정통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해 버리니 말이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지만 민주주의 그 자체는 아니므로 민주주의의 실현, 작게는 한인사회의 안정과 소망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실천의 의지가 선거의 궁극적 목적이다.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중의 하나가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의 민주주의이다. 

시민권을 가진 모든 자유민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결정하는 아테네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새롭게 당선된대통령이나 재영국 한인연합회 회장은 가능한한 국민 또는 재영 한인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으니 나는 이제 내 뜻대로 국가 또는 한인회의 크고 작은 일들을 내 처리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앞서 말한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일정한 재산 또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유민들만의 민주주의였다   같은 시민이라도  신분이 낮은자나 노예, 이방인, 여자들은 제외된 상태였으며 그 뒤 중세에는 신권정치로서 아테네의 부분적 민주주의 조차 부정한 위에 수립되었으며 현실의 모든 권능은 신으로부터 부여된 것으로서 그누구 일반대중이 감히 뒤집을 수 없음이 인식되었다. 

선거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체제를 전복하려는 반역행위로 규정되었다.

 중세 이후 민주주의가 선거라는 형식으로 다시 세계사에 출현한 것은 시민혁명(프:Bourgeois =영:Proletarian revolution)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18세기 유렵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중추적 사건이 되었으며 혁명의 최고봉이며 근대정치사상이 고스란히 표출된 사건으로서 세계의 사회적 가치와 정치적 체계를 촉진시키고 변화시키는데에 있어서 모체가 되었다.  봉건적 구질서를 타파하고 등장한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등가적인 교환체제로 변화시켰다.

 이에따라 정치도 신권이나 봉건영주 또는 절대왕정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시민계급(부르조와)들 사이의 자유로운 경쟁과 계약으로 바뀌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등가적인 선거가 실현되었던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되던 초기에 선거권은 일정수준 이상의 세금을 내는 부르조와에게만 부여되었다. 이러한 제한적 선거가 노동대중에게 그리고 여성들에게까지 확대되기 위해서는 기나긴 시간에 걸친 차티스트(Chartist)운동과 같은 선거권 쟁취투쟁이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20세기초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익숙한 선거제도, 즉 보통,직접,평등, 비밀선거가 확립된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가 민주주의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선거는 결코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인류가 갖고 있는 천부인권적 권리였지만 그 권리를 인류의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천년에 걸친 민주주의 쟁취투쟁이 필요하였던 것이다.그렇다면 이처럼 어렵게 쟁취한 현재의 선거제도는 완전한 것인가? 

더 이상 개선하거나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궁극의 것인가? 필자는 현재의 선거제도 역시 불완전한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의 선거제도가 형식상 보편성의 원칙을 체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다음의 두가지 점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라고 본다.  첫째, 현재의 선거제도가 결국 다수결이라는 수의 논리를 위장한 힘의 논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를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현실의 정치역학과 선거로 표현되는 이른바 "민의"사이에 상당한 간격이 노정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선거나 투표를 통해 다수만 확보하면 무엇이든 정당화된다는 다수결 만능주의, 선거 만능주의 때문에 날치식의 자기편 만들기라든가 현실의 복잡한 상황을 단순한 수의 논리로 치환시키는 요식적인 형식과 절차로 전락해 가는 현재의 선거현황이다. 다수결이 모든 사람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결집하는 원리로 되기 위한 다원적 정치과정이 사상된 채,다수의 논리가 강요될 때, 그 결과는 다수의 횡포일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을 이 수의 논리는 철저히 부정한다. 그것도 민주주의의 이름을 이용하여------.  

둘째는 현재와 같은 선거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완전하게 실현된다 하더라도 간접민주주의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두번째 한계는 첫번째 문제점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다.

 이는 어떤면에서는 현단계의 인류발전 수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제한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직접민주주의는 근대국민국가가 등장하면서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수백, 수천만명의 인구, 넓은 국토라는 환경만으로도 아테네식의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근대국가가 감당해야만 할 복잡하고 다양한 업무는 점차 기술관료들의 역할을 강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현대사회는 대중의 시대가 되었으나 그 대중은 민주주의를 간접적으로 실현하는 것에 만족해야만 하는 대중으로 제한되었다.  

이 간접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가장 중요한 정치의 원리가 된다. 간접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통성은 이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간접민주주의는 사실상 선거와 동일시 된다."민주주의=선거" 라는 단순도식이 우리시대의 일반적인 시민의식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천부의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선거도 본질적으로는 이렇듯 불완전한 과도기적인 것이다.  

따라거 우리가 선거를 이야기할 때는 선거가 갖는 이러한 역사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선거가 만능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거를 만능으로 상정하는 다수의 논리가 때에 따라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두면서 이제 구체적이고 선거공학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선거에 있어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동기로 투표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투표율에 있어 상정될 수있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있다.  선거 입후보자 측이 하향식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것이다. 국가(또는 어느 단체의) 정권은 여러가지 필요 때문에 "공포의 동원화"라는 방식을 사용해 왔으며 이데올로기나 정치권력이 사용할 수있는 조직 등을 통해 대중을 강제로 선거에 동원했으며 심지어 조그만 모임의 단체장선거를 놓고도 자기들의 의견의 결집 내지 소규모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학연, 혈연, 지연 등을 총동원하는 현상들이었다.

둘째로는 목표를 위한 조직화와 그 조직운영을 위한 돈쓰기이다. 어느 정당이나 입후보자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대중을 움직일 수있는 것은 조직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 조직을 활용하려 하니 돈이 필요하게 된다.  

돈은 이 조직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투철한 자기신념과 이데올로기 같은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자발적 결사체도 있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유형, 무형의 선거자금이 유입됨으로써 비로소 작동된다. 이념적 결사체조차도 자신들의 이념과 돈을 배타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입후보자들은 조직과 돈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그물망을 통해 대중들을 일상적으로 조직하며 이들을 선거시기에 투표장으로 동원해 낸다. 결국,  이러한 방식을 통해 총유권자의 30퍼센트 이상을 고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거를 공학적으로 분석할 때 제일 먼저 감안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이렇듯 돈과 조직은 국민 또는 회원들의 바람(소망)을 앞서고 있다.  

필자는 선거가 본질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점, 특히 현행 선거제도가 돈과 조직, 그리고 바람이라는 소극적 방식에 의해 치러짐으로써 유권자(국민 또는 회원) 대중의 의사를 충분히 민주적으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소중하다. 

그것이 현재 비록 불가능하고 왜곡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들이 쟁취한 민주주의 승리의 표시이며 민주주의를 더욱 넓고 깊게 만들어 나갈 대단한 위력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절대선과 절대악의 논리를 갖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현행선거는 거의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그리고 차선도 안되면, 그 중 덜 나쁜것이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선거란 최소한 현실을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안전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에 선거는 만능은 아니지만 매우 유력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선거가 차지하는 역할은 두가지로 분류할 수있다. 

첫째, 정기적으로 치르는 선거를 통해 사회의 발전방향과 각계 각층의 사회적 요구가 점검되고 수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통하여 리더를 바꾸고 그 과정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확인하고 그의 발전적해소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즉, 선거는 사회적 여과장치로서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시키는 것이며 둘째로는 국민 또는 회원대중은 선거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운다는 점이다. 이 길만이 국민 또는 회원이 주권자로 활동할 수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이번에 국가의 대표(대통령), 각지방별 교육행정의 책임자(교육감) 더 가깝게는 재영국 한인 연합회장 등 몇몇의 크고 작은 선거를 마쳤다. 감히 당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위기에 서있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있는 구체적 공약(?)을 지금이라도 제시하고 이왕에 나설 바에야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한인사회의 안정과 신뢰회복을 위하여 노력해 달라고 말이다. 공약을 위한 공약을 무책임하게 해서도 아니될 것이며 그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게 언저리를 맴도는 막연히 하는 불분명한(구체적인 제목도 없이 그저 한인사회를 위하여-------라는 식의--) 모양새로 넘어가지 말고 이제라도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거기에 따르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노력하겠다는 의지와 누구나 공감할 수있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바란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무관심 했거나 냉소하던 한인 한사람 한사람들이 의식전환을 할것이며  점차적으로 회장이나 임원들의 중지에 동조하며 여태까지의 냉소했던 일, 심지어 한인회를 "시궁창" 또는 "똥물통"이라고 표현하던 이 모든 불미스러웠던 일들을 씻고 일어나 "나도 한인의 한사람으로 주권을 행사하고 적극 참여하겠다"는 말들이 나오게 해야 할 것이다. 

새롭게 선출된 회장 및 앞으로 참여할 임원들은 선거에 참여한 한표 한표에 얹혀있는 민주주의 역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체현하는 더욱 살기 좋은 그리고 화기애애한 한인사회를 구성하여 선거에 참여했던 일을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기를 바란다.
 
 
김 레이첼 목사
국제 청년 문화쎈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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