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평화의 절대적 조건
국제정치 분야에서 그 의미가 잘못 알려졌거나 남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용어 중 하나가 ‘핵보유국(nuclear weapon states)’이다.
특히 북한의 핵문제가 장기화돼 한반도의 안전, 더 나아가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까지 위협하는 지경으로 악화된 현 상황에서는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최근 수년 동안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고 거듭 요구하고 있는 반면, 한국과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절대 다수 국가들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입장이다.
외견상 “북한은 핵보유국인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단순한 말장난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주지하듯 북한은 약 10개 내외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핵물질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며, 두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무장 능력을 기술적으로 입증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기술적인 측면만을 놓고 본다면,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기 쉽다. 하지만 이는 결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본래 핵보유국이란 말은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발효를 계기로 등장한 것이다. NPT는 가입국들에 원자력의 평화적인 이용권을 보장하되 핵무기의 포기, 타국에 대한 핵무기 관련 물자와 기술의 비확산(nonproliferation)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대신 당시까지 이미 핵무기를 개발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에는 비확산 의무만을 규정할 뿐, 핵무기의 포기는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은 NPT에서 예외를 인정받은 5개 강대국만을 포함한다. 이들은 자체 의사에 따라 앞으로도 핵무기를 계속 보유할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채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외교·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나머지 국가들은 비록 현 시점에서 핵무기를 개발, 보유할 기술적인 능력이 있어도 언젠가는 이를 포기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거부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외교·경제적인 불이익을 받게 된다. 흔히 ‘비공식 핵보유국’이라고 알려진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그리고 북한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보다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핵무장국(nuclear-armed states)’이다.
핵보유국이란 용어는 단순히 ‘핵무기를 개발, 사용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핵무기의 포기를 요구받지 않는 국가’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국제적인 비핵화(denuclearization) 의무와 직결되는 정치·외교적 의미를 갖는 용어다. 이쯤 되면 북한이 왜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인정할지의 여부가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명백해진다.
북한이 요구하는 핵보유국 인정이란 한마디로 ‘한반도 비핵화의 실패’를 뜻한다. 이 경우 북한은 핵무기를 가진 상태에서 버젓이 미국 등 국제사회와 관계 개선, 경제 개발에 나설 수 있게 된다. 반면 한국은 북한보다 회복하기 힘든 군사적인 열세를 강요받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외교안보의 최대 버팀목이었던 미국과의 동맹 관계도 파탄 상태에 놓일 것이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과 국제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미국과 중국에 핵실험 사실을 미리 통보했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핵 도발을 저지른데 대한 책임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공은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정부가 미국 중국 등 주변국, 안보리 이사국과 얼마나 외교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북한에게 핵실험을 후회할 정도의 타격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말만 요란한 제재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했음에도 우리가 쓸 수 있는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다는 것은 국가 안보의 큰 허점이다.
비핵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결코 양보돼서는 안 될 절대적인 조건이며,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요구될지 몰라도 기필코 달성돼야 한다. 북한도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는 이상, 결코 생존과 재건, 관계 개선을 보장받지 못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관련 기사 : 사회면 6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