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우주 허공에 존재하는 별들은 지구의 모든 바닷가 모래사장의 모래알을 합한 것만큼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존재하는 지구는 수많은 별들에 비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먼지 한 알갱이만큼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한 지구에 사는 인간은 거기서 또 한참 미미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전체의 0.0∙∙∙∞1% 밖에 안 됩니다.
세상은 완전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섭리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만상은 세상의 섭리대로 이어서 완전한 조화와 균형 속에 있고 상생(相生)의 관계입니다. 상생의 관계는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 이것이 있는 관계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은 세상의 섭리대로이지 못하고 제 뜻대로 이기 때문에 섭리를 어기고 있습니다. 인간이 섭리를 어겨서 조화와 균형을 깨뜨려도 세상이 탈 없이 굴러가는 것은 세상의 99.9∙∙∙∞9%인 만물만상이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삶이 고달픈 것은 사람이 섭리를 거스르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산골짜기에 물이 흐르는데 어느 날 산에서 굴러내려 온 바위가 물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면 물은 섭리대로 바위를 비껴 돌아 흐르지만 바위는 물의 흐름(섭리)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물의 흐름에 계속 시달립니다. 오랜 세월 물살에 깎이고 깎여서 바위가 없어지면 더 이상 시달림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기 뜻(마음)이 있어 세상 섭리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마음)대로 살기 때문에 섭리를 가로막고(거스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항상 섭리에 부딪쳐서 시달림(시련)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의 근본 원인은 내가 가진 마음에 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일체가 내 탓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알고 시련에 처하면 남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내 안(마음)에 원인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빼버리면 시련을 벗어납니다. 그렇지 않고 남 탓을 하고 환경 탓을 하면 근본 원인(내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시련의 원인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계속 시련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내 안(마음)에 원인이 있음(내 탓임)을 알게 해주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주므로 시련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큰 시련이 올수록 더 큰 근본원인(마음)을 뺄 수 있는 계기가 되니 더 크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될 때 시련은 축복입니다. 더 큰 시련은 더 큰 축복입니다.
태양은 호(好)불호(不好)를 가리지 않고 미우나 고우나 똑 같이 햇빛을 고루 비춥니다. 물도 그러하고 공기도 그러합니다. 세상 섭리대로 자연은 그냥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도 모두 세상 섭리 덕분입니다. 사람이 세상 섭리를 거스르는데도 이렇게 살게 해줍니다. 한 순간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데 세상 섭리는 어느 한 순간도 숨을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살리는(있게 하는) 세상에 대해 감사하여야 합니다. 나를 있게 하는 세상과 만물만상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나를 있게 한 조상과 더불어 같이 사는 이웃에게도 감사하여야 합니다. 좋은 일은 물론이고 궂은일에 조차도 감사하여야 합니다. 어느 한 순간도 감사하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범사(凡事)에 범물(凡物)에 범시(凡時)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항상’ ‘모든 일’에 ‘만물만상’에 세상의 주인에 대하여 감사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