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문화센터 다음부터 본격적인 골목길 탐방이 시작된다. 프르른 한국의 가을하늘로 향하는 오르막길 양쪽으로는 북촌봉산아트센터와 게스트하우스, 이가문화체험관, 석정보름우물터 등의 볼거리들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골목의 끝에서 다시 짧은 내리막길을 걸어 찾아간 곳은 한상수자수박물관.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인 한상수 장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19세기 조선과 청나라의 자수를 재현한 장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수 바늘과 실의 사용법을 익히고 두 종류의 전통자수기법을 익힐 수 있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수시로 운영되고 있었다. 생계조차 어려웠던 시절, 아이를 업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한국 전통수를 연구했다는 한상수장인의 열정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상수자수박물관에서 나와 가회박물관과 매듭공방으로 내려가는 길의 바닥에서 포토스팟이라는 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북촌 3경의 표지였다. 북촌의 전통과 삶을 상징하는 문양인 기와와 장독대로 디자인된 포토스팟은 서울시가 북촌을 서울의 대표적 문화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북촌의 중심적인 관광자원이라 할 수 있는 한옥 경관과 한옥이 주도하는 골목길 풍경 8곳이 선정되었다. 이중 가회동 11번지 일대를 지칭하는 북촌 3경은 한옥의 내부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한옥과 함께 소박한 전통이 살아 숨쉬는 있는 그대로의 북촌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북촌 3경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가회박물관이 있다. 2002년 문을 연 가회박물관에는 인간의 삶과 염원이 담겨 있는 250점의 민화와 750점의 부적, 150점의 전적류 및 기타 민속자료 250여 점 등 총 1,500여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 고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전통 한옥 전시실에는 옛 사람들의 진솔한 감정이 담겨 있는 민화와 주술적 신앙이 반영되어 있는 벽사그림 외에 통일신라시대의 인면와(人面瓦), 귀면와(鬼面瓦)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부적과 부적병풍도 전시되어 있어 재난극복을 위한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면 관람객이 직접 부적을 찍고, 귀면와를 탁본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강화 선원사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연근차가 무료로 제공되어 통나무 의자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면서 잠시 발걸음을 쉬어가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다음은 북촌체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북촌 한옥체험관.'만추'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동양화계의 거목 배렴의 집이었던 북촌 한옥체험관은 아담한 전통 한옥의 목조 기와집으로 3동의 건물이 ㅁ자형 구조를 이루며 연면적 128.93㎡이다. 서울시 SH공사 소유로 2004년 2월 개보수 공사를 거쳐 북촌 한옥체험관으로 위탁, 운영하고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전통적인 운치를 느낄 수 있으며 욕실과 주방, 거실을 공용으로 사용한다. 별채에는 화장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다. 어느 방에 묵어도 한가운데 놓인 작은 정원이 바로 보여 답답하지 않고, 작지만 조용하고 운치 있어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북촌 일대에는 북촌 한옥체험관 이외에도 한옥체험관 '우리집', 안국 한옥체험과, 락고재 한옥체험관 등의 게스트 하우스가 운영되고 있다.
북촌 한옥체험관에서 다시 골목길을 내려와 큰길을 건너면 북촌 도보관광의 두번째 코스와 만나게 된다. 한옥문화원과 북촌전통공방 고드레를 지나는 언덕길을 오르면 북촌 8경 중 4경, 5경, 6경, 7경이 밀집해 있는 가회동 31번지 일대가 나온다. 좌측 축대 위로 올라가서 바라보는 북촌 4경은 가회동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북촌을 대표하는 경관임에 부족함이 없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듯한 기와지붕 들 사이에서 유독 초록색 박곡지붕을 인 이준구 가옥이 눈길을 끈다. 키 큰 회나무집을 돌아 올라가면 처마를 맞대고 빼곡하게 늘어선 예스런 한옥들이 반갑게 맞이해준다.북촌에서 특히 뛰어난 한옥들이 잘 보존된 북촌 5경이다. 이곳은 서울시 북촌 한옥보존사업 초기부터 적극적인 골목보호 정책으로 한옥의 경관과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북촌 5경에서 언덕길을 올라 막바지에 이르면 내리막 방향으로 북촌 6경이 펼쳐진다. 한옥 지붕사이로 펼쳐지는 서울 시내의 풍경이 이체롭다. 북촌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5경과 6경을 지나면 미음 갤러리 왼쪽길로 소박하고 고즈넉한 여유가 느껴지는 북촌 7경과 만날 수 있다.
조용한 골목길 사이사이에 아기자기한 꽃 화분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북촌은 한옥의 동네이면서, 그 한옥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북촌생활사박물관은 북촌에서 수집한 우리 근대 생활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몇 백 년 전부터 불과 몇 십년 전까지 대를 이어 사용돼 오다가 눈먼 산업화에 밀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조금은 촌스럽고 유치하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정겨운 우리네 옛 생활물건들을 가정집 같은 전시관 안에 아무런 칸막이 없이 아기자기하게 모아 놓았다.
박물관은 고물들이 있는 전시관과 체험학습관의 두 공간으로 나뉘어져 새로운 개념의 열린 박물관을 표방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옛것들을 미련 없이 내다 버리는 산업화의 시류 속에서 용케 살아남은, 궁핍한 시절 조악하게 만들어졌을지언정 우리네 지나온 삶의 진솔한 증거이자 오롯한 추억인 우리 옛 생활물건 8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전시된 모든 물건들을 관람자가 직접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체험학습관에서는 사용이 가능한 물건을 옛 방식대로 직접 체험해 보거나 전통먹거리와 놀거리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북촌에 우리의 예스러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촌에서 다소 이색적인 볼거리중 하나인 세계장신구박물관은 세계 곳곳에서 모인 전통 장신구 1,000여 점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2004년 5월에 개관한 세계장신구 박물관은 '북촌의 새 이정표'라는 애칭을 얻으며 방문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건축가 김승희가 구현했다는 박물관 건물 또한 이체로운 볼거리다.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2층 양옥을 고쳐 지어졌다는 이 건물은 한옥들 사이에 독특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북촌을 대표하는 문화재중 하나인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은 1969년 서울유형문화재 제 9호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관청으로 조선왕조 역대 모든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영정(초상화)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宗室諸君)의 봉작승습·관혼상제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곳이다. 조선 전기에는 ‘재내제군소’라 하였으나 여러 차례 그 명칭과 기능이 바뀌었다가, 세종 12년(1430)에 종친부라 하였다. 순종 융희 1년(1907)에는 이를 폐지하고, 이곳 사무를 규장각으로 옮겼다.
종친부를 나와 길을 나서니 여러 갤러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트선재센터를 비롯하여 아라리오 서울, PKM 갤러리 등 현대예술의 첨단을 달리는 갤러리들을 지나면서 북촌의 골목길 탐방이 시간여행이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전통과 근대, 현대를 어우르는 북촌 한옥마을은 이 밖에도 무궁무진한 볼거리와 느낄거리가 산재한 곳이다. 현대화의 거센 흐름속에서도 도심의 뒤안길을 묵묵히 지켜온 한옥의 숨결이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삶의 향기로 남길 바란다.
유로저널 프랑스지사
오세견 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