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단독보도 재독동포 김영상박사 북한방문기
60년만에 다시 찾은 내 고향 북녁땅 (7)
김영상박사(81)는 개성에서 출생해 당시 6년제인 개성중학교를 다니던 중 6.25를 만났다. 18세의 나이에 미 보병 25사단 예하 35연대 군속으로 종군하면서 가족과 헤어진 것이 오늘에 이른다. 김씨는 서울공대를 졸업한 후1958년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 하노버 공대(석사)와 슈투트가르트 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공학박사)했다. 김박사는 MAN회사, Hoechst 화학회사 등 독일 유명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1994년 정년 퇴직했다. 그는 재독한국과학기술자협회장, 프랑크푸르트 한국문화회관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거주지인 하터스하임(Hattersheim)의 외국인 후원정책팀 고문직을 맡아보고 있다. 독일인 아내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이 기행문은 일기형식으로 꾸며졌으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취재기자(김운경)가 정리했다.
5월 10일(목)
공예 스튜디오
우리 내외를 포함한 독일관광팀은 아침 8시45분 정각 평양 예술관으로 갔다. 건물 3개동에 '오일 아쿠아렐', '자수', '조각' 등을 수업하는 교실들이 들어찼고 각 분야의 유명인들이 이곳에 아뜰리에를 가지고 있었다. 안내원은 “이곳은 예술가들의 세상이며 창조 활동을 하는 곳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북한 예술가들은 모두 국가공무원이다. 우리가 방문하던 날 오일 아쿠아렐 부에서 작품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60대 쯤 되어 보이는 원로 화가의 그림들이었는데 대부분 묘향산과 금강산의 풍경이었다. 북한에서 과연 그림을 살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비쌌다.
아내와 나는 수예품에 관심이 갔다. 비단 천에 명주실로 백합을 수놓은 자수가 특히 마음에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유명인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유럽에 비하면 싼 편이었다. 기념으로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학생소년궁전을 방문했을 때 그 곳 수예품 코너에서 우리가 산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 진열되어 있었다. 궁금해서 가격을 물어보니 우리가 산 값의 10분의 1 밖에 안됐다. 어이가 없었다. 우리팀 안내원 K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그가 알아보고 와서 하는 말이 우리가 산 것은 일류 예술가가 직접 제작한 진품이며 이곳에서 파는 것은 학생들이 제작한 모사품이어서 가격에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흉내낸 작품에는 버젓이 작가의 이름까지 수 놓아져 있었다. K는 학생들이 모르고 만든 것 같다며 얼버무린다. 북한은 저작권 사각지대였다.
학생소년궁전예술단
북한은 예체능 분야에 재능이 있는 영재들을 뽑아 학생소년궁전에서 집중 교육을 한다. 두군데 학생소년궁전이 있는데 하나는 평양 학생들 중에서 뽑힌 8세-12세 영재들을 위한 교육기관이고 다른 하나는 전국에서 선발된 학생들의 재능을 양성하는 곳이다. 우리가 찾은 곳은 평양 학생예술단이었다. 우리는 몇 군데 대표적인 수업을 참관했다. 가야금 교실을 가보니 20명 정도의 여자 아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고 아코디온 교실에도 20명 가량의 학생들이 교사에게서 지도를 받고 있었다. 아코디온은 특히 북한에서 가장 대중적인 악기다. 또 트럼펫,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의 악기와 북한에서 개발했다는 특이한 악기도 가르치고 있었다. 학생궁전에는 수예반도 있었고 컴퓨터 강의도 실시했다. 2003년만해도 컴퓨터 보급이 미약했다. 한편 강당에서는 태권도, 유도, 기계체조 등 체육수업이 진행되었다. 북한은 2013년부터 12년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무대 공연
소년궁전 대형 홀에서 학생들의 공연이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의 재롱에 푹 빠져들었다. 나는 2003년에도 이곳에 왔었는데 열 번을 봐도 실증날 것 같지 않았다. 아직 어린 학생들인데도 정말로 프로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 밖으로 나오는데 누가 뒤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매우 공손한 목소리여서 뒤돌아보니 김일성 뺏지를 단 키가 큰 신사였다. 40대로 보이는 그는 “안녕하십니까, 할아버님!” “도아 드릴까요” 하더니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벌써 자신의 오른 팔로 내 왼팔을 가볍게 끼는 것이 아닌가. “행사가 마음에 들었습니까” “저는 여기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더니 “우리의 소년들이 예술과 체육을 열심히 연마해 기쁜 노래와 아름다운 춤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즐겁게 해드리면 오래오래 사실 것이라고 김일성 주석께서 말씀하셨으니까 할아버님께서도 앞으로10년이상 더 오래 사실겁니다. 그러니 다음에 또 오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북한에서 이같은 친절한 말투와 공손한 예우를 처음 받아보기 때문이었다.
단군능
나는 개성에서 국민학교 다닐 때 역사 시간에 우리나라의 시조는 단군 할아버지이며 4000여년 전에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배웠다. 물론 단군신화도 배웠다. 그런데 지금 북한에서는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세웠으며 BC 360년까지 존속하다가 중국(한나라 시대)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고 설명한다. 더 놀라운 것은 북한에서 단군의 유골을 발견했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주장을 2003년에 방문했을 때 안내원한테 들었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김일성 주석이 90년에 역사학자들에게 단군 연구를 강화하고 유골을 찾아내라고 지시해 학자들과 관계자들이 각종 사료를 조사 연구한 후 발굴작업을 개시, 마침내 1993년에 단군의 유골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유골이 실제로 단군의 유골인지 증명이 됐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은 발굴 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고고학자들을 초청해 검증을 의뢰한 결과 유골이 확실한 것으로 판명됐다며, 이때 남한에서도 여러 명의 교수가 참가했다고 한다. 북한을 방문한 다음 해인 200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한국에서 그런 얘기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단군능은 평양 시내에서 승용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직경 100 m 정도의 피라미드형으로 조성됐다. 능까지 가려면 입구부터 시작되는 수 많은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나는 계단 수를 세면서 올라갔는데 여러번 쉬어야 했다. 계단은 모두 301개였다. 능 아래에는 3m정도의 대리석으로 만든 장군상과 관리상들이 도열해 있고 좀더 올라가면 다시 좌우에 2명씩 단군의 아들 (부루, 부소, 부우, 부여) 석상들이 같은 크기로 세워져 있다. 나는 2003년 방문했을 때 능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일인당 100유로를 주고 그들이 주장하는 단군 내외의 유골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돈을 준다고 해도 들어갈 수 없었다.
80년대부터 북한에서는 재래식 공동묘지가 사라졌다. 농경지가 부족해 농사지을 땅이 귀한 마당에 공동묘지 같은 비생산적인 토지는 더 이상 필요없다는 이유로 모두 농경지로 개간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북한에서는 화장만 허용된다. 유골은 작은 나무통에 넣어 지정된 건물 내에 보관한다. 일년에 한 번 제사날에 한해서 고인의 가족에게 유골을 가져가 집에서 제사를 올리게 한다. 단 농가에서는 예외로 정부가 지정한 곳에 매장할 수 있다.
5월11일(금)
판문점 가는 길
매주 금요일은 일반 공무원들이 농촌에 나가서 작업하는 날이다. 안내원K도 우리 독일관광팀을 맡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느 농촌에서 땅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해 한바탕 웃었다.
아침 8시에 남쪽을 향해 떠났다. 우리는 북한 최초의 고속도로인 평양-개성 도로로 들어섰다. 약 반시간 쯤 가다보니 고속도로 위에 거대한 기념탑이 나타났다. 높이 30m, 폭 61m크기로 고속도로 좌우에서 한복을입은 거대한 두 여성이 몸을 숙인 채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인데 통일을 상징하는 탑이라고 했다. 남북기본합의서(1990년 9월 제1차 고위급회담을 시작한 이후 15개월 만에 채택된 합의서로, 1992년 2월 평양에서 열린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합의서 문건을 정식으로 교환하고, 그해 9월 제8차 고위급회담에서 최종적으로 3개 부속합의서를 채택함으로써 효력 발생) 체결을 기념해 세웠다는 이 탑까지의 도로를 '통일로'라 불렀다.
평양을 출발해 1시간 이상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아직까지 주유소를 보지못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김영상박사, 사진: 부인 김일제
정리: 유로저널 프랑크푸르트 김운경
woonkk@hotmail.com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