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시대의 사람들은 기후변화, 가뭄과 홍수, 화산폭발,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과 맹수의 습격에서 살아남아서 자손을 번성하게 하는 것이 삶의 의의와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받들어 모시는 신에게도 사는 동안에 잘 살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몸의 목숨이 다하여 죽으면 사후세계(死後世界)를 주관하는 신에게로 돌아가서 잘 살기 위해서 살아있는 동안에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지침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가짐의 마음에서 자기가 바라는 신을 그리고 자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빌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의 근본적인 마음자세는 원시시대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개명천지(開明天地)라는 말이 나온 뒤에도 여전합니다. 때가 되어 성현들이 진리를 알려준 이후에도 사람들은 가짐의 마음에서 성현들의 말을 제멋대로 듣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또 가짐의 마음에서 자기가 바라는 신을 멋대로 그리고 자기가 그리고 있는 신을 믿는 다고 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고 가짐의 마음이 빚어낸 관념의 신 - 허상의 신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파벌로 갈라져서 자기만 옳다하여 서로 반목질시(反目嫉視)하고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습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삶을 잘 살고 사후에도 잘 되려고 하는 마음을 바닥에 깔고 기복(忌服)을 하는 일도 많습니다. 깊이 성찰(省察)해 보면 삶의 지침을 지키려 하는 것도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이고, 선행(善行)을 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기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종교의 존재의의와 목적은 ‘신의 나라에 거듭나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켜야 할 삶의 지침도 주었지만 지침대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성현들의 예언이 실현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삶의 의의와 목적은 신과 신의 나라에 거듭나서 영원히 사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삶의 의의와 목적은 다릅니다. 진시황제는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 삶의 의의와 목적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는 노동자의 낙원을 실현시키는 것이 삶의 의의와 목적이었습니다. 혁명투사의 삶의 의의와 목적은 자기가 신봉하는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는 과학적인 대 발명이나 발견을 하여 이름을 날리고 사람들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하고자 온 힘을 기울여 연구하는 것이 삶의 의의와 목적일 수 있습니다. 의사는 질병을 몰아내어 인류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삶의 의의와 목적으로 삼기도 합니다. 성직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삶의 의의와 목적을 위해 삶의 다른 부분을 희생하였습니다.
만일 성현들이 예언한 대로 신의 나라에 거듭나서 영원히 살게 되는 때가 오면 삶의 의의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 때의 삶의 의의와 목적은 신의 나라에 거듭나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알렉산더도, 징기스칸도, 나폴레옹도, 빌게이츠도 죽으면 끝입니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누리다가도 죽음이 가까워지면 삶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진시황이 불노초(不老草)를 구하려고 신하들을 사방으로 보낸 일화는 유명합니다. 누구나 오래 살려고 보약도 먹고 특수한 수행도 합니다. 또 불멸의 존재를 상상하고(미신과 신화) 그것에 의지하려 합니다. 성현들의 예언이 실현되는 때에는 천하에 없는 부귀공명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현들은 마음을 비우고 회개하여 자기마저 버리는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나라에서 영원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삶의 의의와 목적임을 알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