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옹빈허 씨가 살면서 몸(오감)으로 사진 찍어 마음에 담아놓은 것은 모두 허상입니다. 세상도, 만물만상도, 자기 자신도 사진 찍어 담은 허상입니다. 허상 세상에서 허상의 존재가 허상의 삶을 살았습니다. 또 이렇게 찍어 담은 것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며 삶을 삽니다. 그러니 어느 한 순간도 허상을 벗어나 산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사진을 찍고 동시에 그 사진 속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 속에서 살 겁니다.
고향 친구를 만나서 고향 이야기를 할 때는 마음에 담겨있는 고향의 사진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해외여행 갔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여행했던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합니다, 젊은 시절 다정했던 이와 거닐었던 곳에 가면 그 때 찍어놓은 사진이 떠오릅니다. 그 곳의 이미지와 그 녀의 모습, 나누었던 이야기 하며 그 때의 감정과 느낌 일체가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길을 가다 삼십 년 전에 나를 괴롭혔던 사람과 닮은 사람을 보면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그 사람과의 괴로운 사연과 함께 분한 감정도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으면 책을 보거나 학자의 강연을 듣고 (사진 찍어) 마음에 담아놓은 지식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에도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며 사진 찍어 마음에 담아놓은 것 중에서 그때그때 이야기의 주제에 맞는 사진을 찾아서 떠올리며 말을 합니다. 상념(想念)에 젖을 때에도 마음에 담아놓은 사진을 떠올리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합니다.
살면서 있었던 모든 사연과 인연과 희로애락의 감정이 그대로 마음에 담겨 있어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공위성을 타고 북극성보다 더 먼 어느 별에 가서도 투옹 씨는 지구에서 살면서 사진 찍어 마음에 담아놓은 사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지구에는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별에서의 삶이 낙원이어서 근심걱정고통도 없이 잘 살고 있지만 지구에서 살았던 이런저런 사연이 떠올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지구인이 그리워 가슴이 저미기도 하고 별과는 다른 지구의 풍광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지구의 사진이 마음에 담겨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를 가든,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 항상 사진이 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사진이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닙니다.
투옹 씨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을 하며 사는 것은 마음에 담아놓은 사진에 국한됩니다. 사진 찍혀있는 것만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행할 수 있습니다. 사진 찍혀있지 않은 것은 생각도 말도 행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진이 곧 투옹 씨입니다.
또 이렇게 사진에 붙들려있기 때문에 사진 말고는 다른 것은 보고 듣지를 못합니다. 사진이 곧 투옹 씨고 투옹 씨가 곧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허상)밖에 모릅니다. 있는 실상세상을 모르고 없는 허상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투옹 씨는 망념(妄念)의 삶을 살아왔고 현재도 망념 속에 있고 앞으로도 망념 속에 있을 겁니다. 망념은 허망(虛妄)한 생각일 뿐 없는 것입니다. 투옹 씨만 그러할까요? 모든 사람이 망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망념의 존재가 망념의 세상에서 망념의 삶을 살고 있음을 알고 망념에서 벗어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