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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책을 쩔쩔맨 대학신입생

by 유로저널 posted Aug 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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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어 쩔쩔맨 대학신입생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한 때 세간에 떠들썩했던 부정입학 혹은 기부금입학과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임을 미리 밝혀 두는 게 좋겠다.  기부금입학은 가난했던 나에게는 개념조차 생소한 단어였으니까 말이다.  
떳떳하게 대학학력고사를 치루고 대학에 들어갔건만 나는 첫 국어시간에 교재를 펴들자마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이건 국어책인지 아니면 한문책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줄에 하나꼴로 모르는 한자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와서 한 단락을 쉬지않고 길게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이런 내 형편을 아는지 모르는지 교양국어를 담당한 교수님은 가끔씩 아무나 지명해서 읽기를 시키시곤 했으니 한자속성반에 들어가서 매일 50여자씩을 한달여간 습득하기 전까지는 나에게 그야말로 진땀나는 국어시간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일하고 야간에 상업고등학교 과정를 끝내고 대학에 운좋게 들어간 내가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고교 3년 동안 한문을 한 시간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2, 3학년때 일주일에 한 시간씩 들었던 한문 수업이후로 한문이란 과목은 이름조차 잊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인문과목들은 독학하다시피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긴 갔는데 이건 장및빛 탄탄대로는 커녕 가도가도 험한 산만 계속해서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겨냈는지 내 자신도 참 신기할 정도이다.  
국어책을 조금 수월하게 읽게 되었을 무렵에는 또 내 전공인 영어 발음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자음 발음시험후에 ‘너 상고 나왔니?’ 라고 묻던 담당교수님 질문에 나는 얼떨결에 “예” 하고 대답은 했지만 너무 부끄러워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생활비와 학비를 버느라 낮에는 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밤에 야간 수업이 끝나면 또 짬을 내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영어발음교정을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서 영어회화학원에 다니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나는 영어권 나라에서 살고 있다.  대학원 석사과정때 나중에 뭐하겠느냐는 동기들의 물음에 늘 나는 30대초반에 영어권 나라에 가서 영어를 최소한 5년 이상 습득하겠노라고 했던 내 말이 씨가 되어 그렇게 했다.  이제는 5년이 아니라 내 남은 반 평생을 영어를 하며 살아야 될 상황이다. 처음 공부하러갔던 캐나다 밴쿠버에서 얼마나 오래 있을거냐는 처음 언어연수하러 온 사람들에게 으레 묻던 질문에 내가  “아이들도 말을 어느 정도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5년은 걸리겠지요?” 하고 대답을 하자 “아이들이 몇인데요?”하고 어떤 어른이 되물어서 그때 결혼도 하지 않았었던 내가 얼마나 황당했었던지….  
결혼전 가끔씩 내 영어발음 때문에 남편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때가 있었다.   한 예로 언젠가 전화에서 지금 뭐하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복습을 한다(I review now.)고 했더니, 그게 정말이냐고 재차 묻는 것이 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자신이 뭐 서운하게 한 게 있느냐고 계속 물었다.   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담?  하면서 그때서야 나는 우리의 의사소통에, 아니 더 정확히는 내 영어발음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챘다.  가까스로 학교에서 배운 과목을 시험에 대비해서 다시 공부한다고 말을 해서 그 긴장감 넘치던 순간을 안도의 한숨으로 끝맺었던 기억이 난다.   그에게는 나의 말, ‘복습한다’가 ‘당신을 떠난다’(I leave you now.)로 들렸다고 그래서 아주 놀랬었노라고 나중에 실토했다.  내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전문대학에서 혹은 입시학원이나  아르바이트로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나도 모르게 잘못 가르치지 않았을까 싶어 죄송스럽다.  
대학때 배운 많은 건 까많게 잊었지만, 다른 언어를 배울 때 처음에는 큰 보따리처럼 뭉텅이로 들리던 문장이 나중에 익숙해지면 단어 하나하나로  쪼개져서 들려진다고 했던 언어학 이론이 생각나곤 한다.  라디오 뉴스를 들으면서 그 이론이 실제로 나에게 적용되던 날 정말 얼마나 가슴 벅차고 기뻤던지.  야, 하나하나 다 들린다, 다 들려!
어렵고 힘들었던 와중에도 늘 선한 길로 내 꿈을 이루도록 인도하여 주셨던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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